국내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뮤지컬 <HOPE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하 ‘HOPE’)은 작품성과 재미를 동시에 만족시킨 수작으로 정평이 나있다. 초대형 라이선스 공연이나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수많은 뮤지컬 사이에서 <HOPE>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신진 창작자들의 신선한 시도로 시작해 안정적으로 뮤지컬 시장에 안착한 작품이라는 점이 <HOPE>가 가진 강점이다. 2017년, 신인 창작자들의 데뷔작으로 탄생한 <HOPE>는 프로덕션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줄 제작사 알앤디웍스를 거쳐 한국 뮤지컬 시장에 탄탄하게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HOPE>는 ‘2019년에 선보인 작품 중 가장 돋보였다’라는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예그린뮤지컬어워드와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 극본상, 여우주연상, 연출상 등 총 11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창작 초연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총 85회 공연 동안 평균 객석 점유율 94.5%를 달성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관객과 평단의 시선을 끌 수 있었던 <HOPE>만의 매력은 기존 뮤지컬들에서 보기 어려운 인물 설정과 스토리에 있다. 주인공 호프는 극이 진행되는 110분 내내 허름하고 낡은 옷, 헝클어진 머리, 때 묻은 얼굴로 무대 곳곳을 누빈다. 이처럼 '78세 노파'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은 기존 뮤지컬 흥행 공식을 변주해 <HOPE>의 첫인상을 색다르고 신선하게 만들었다. 또한, 여성 캐릭터들이 주체적으로 본인만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도 이전과는 달라진 관객들의 니즈를 폭넓게 충족시켰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이 초연과 재연에 걸쳐 큰 성과를 얻었다는 것은 국내 뮤지컬 시장에도, 프로덕션에도 유의미한 결과였다.
‘새로운 시작’을 내걸고 돌아온 이번 시즌에는 중년 여성 배우 3인이 타이틀롤 호프 역으로 극의 중심을 잡는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초대 크리스틴으로 잘 알려져 있는 관록 있는 배우 이혜경이 합류해 눈길을 끈다. 아시아 최대 규모 극단 [(四季)](사계)의 한국인 최초 수석 배우이자, 2020년 재연 당시 뮤지컬 <시카고>, <넥스트 투 노멀> 이후 8년 만에 국내 무대 복귀로 <HOPE>를 선택해 화제를 모았던 베테랑 배우 김지현 그리고 초연부터 캐릭터에 완벽히 흡수된 모습을 통해 한국 대표 뮤지컬 배우의 명성을 입증한 배우 김선영까지 이름만으로도 든든한 타이틀롤 라인업으로 <HOPE>만의 무게감을 완성했다.
이외에도 호프의 엄마 ‘마리’, 호프의 회상 속 존재하는 ‘과거 호프’ 등 호프와 함께 극의 축을 이루는 여성 캐릭터들 또한 눈길을 끈다. 호프의 엄마 ‘마리’는 참혹한 전쟁 속 여성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호프의 회상 속에만 존재하는 ‘과거 호프’는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과 30년간 소송을 이어온 현재의 78세 노파 호프가 그간 겪은 세월의 격동을 대변하며 존재감 있는 활약을 선보인다. 뮤지컬 <HOPE>는 오는 6월 11일까지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된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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