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 외국문화의 유입에 의해 한국에서 서양화단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1920년대부터 문화적 대변환의 계기가 된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미술이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주요작가별 특징과 시대별 변천사를 한자리에 모아 재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이러한 취지 아래, 1920년대 이후 외국문화의 선별적 도입 및 반향에 따른 향토적 소재의 한국적 화풍을 보여주는 <우리 땅, 민족의 노래>, 미술사에서 소외되었던 여성 및 해외(북한) 이주 작가의 미술을 재조명하는 <여성, 또 하나의 미술사>와 <디아스포라, 민족사의 여백>, 국전의 아카데미즘에 반발하여 새로운 표현양식을 추구한 추상미술의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추상, 세계화의 도전과 성취> 그리고 조각에서의 한국적 구상 실현과 세계적 추세였던 추상으로의 전개를 보여주는 <조각, 시대를 빚고 깎고> 등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5개 소주제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골목 안>, 이쾌대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천경자 <초원Ⅱ>, 김환기 <산>, 유영국의 <산> 등 잘 알려진 대표작뿐만 아니라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숨은 수작과 작가의 생각과 필치를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드로잉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 전시 소개
PartⅠ. 우리 땅, 민족의 노래
한국 근대미술가들은 이 땅의 공기, 이 땅의 얼굴을 즐겨 그렸다. 경관이든 인물이든 그것은 우리가 사는 시대의 하나의 ‘풍경(風景)’이라 요약할 수 있다. 풍경은 눈에 보이는 외관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를 담는다. 경(景)은 ‘날(日)의 빛(光)과 그림자’를 의미하듯이, 객관적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풍(風)’은 ‘풍토’나 ‘풍수’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혈과 맥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한국 근대미술의 인물화와 풍경화는 단순히 소재 차원을 뛰어넘어 시대의 공기, 시간을 압축한 민족의 노래다. 이 섹션의 화면은 일제 강점과 해방, 6.25 전쟁의 격동을 거쳐낸 대한민국 역사의 빛과 그림자다.
PartⅡ. 디아스포라, 민족사의 여백
민족분단 70년. 이 시간과 공간은 비단 이데올로기의 분단, 국토의 분단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분단이라 해야 옳다. 미술의 남북 분단도 장장 70년이 이어지고 있다. 동족상잔의 6.25 전쟁을 거치면서 미술계의 인적 구조는 대대적인 변혁을 겪었다. 이른바 ‘월남 작가’와 ‘월북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뼈아픈 이산(離散)의 미술사가 탄생했다. 이번 전시는 이 분단의 미술사를 조명하는 섹션을 꾸몄다. 자칫 전설로 사라질 뻔했던 월북작가의 유산이 극적으로 부활해 우리와 다시 만난다. 또 ‘제3의 한국’ 해외 한인 작가의 작품도 소개한다.
PartⅢ. 여성, 또 하나의 미술사
봉건, 남성 중심 가부장제의 질곡을 딛고 일어선 한국 여성 미술의 여정을 추적하는 섹션이다. 근대미술을 ‘여성’이라는 시각으로 조명한 전시는 아직 한 번도 없다. 이 섹션은 남성 중심의 주류 미술사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한국 근대의 여성 미술은 그 존재 자체로 선구적, 이례적, 극적, 숙명적이다. 불같은 생애와 예술은 모두가 한 편의 소설이요 드라마 이상이다. 출품 작가 모두 험난한 해외 유학의 길을 걸었다. 결혼과 육아, 가사, 사회 편견 등 3중 4중의 고난과 굴곡을 딛고 일어선 여성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PartⅣ. 추상, 세계화의 도전과 성취
20세기 미술은 추상으로 치닫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추상이 승리했다. 추상의 여정에는 시대를 앞서는 ‘전위(avant-garde) 정신’이 맹렬하게 작동했다. 이 거대한 흐름에 한국 근대미술도 동참했다. 한국의 추상미술은 국제화, 세계화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를 놓지 않았다. 한국의 추상미술은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자 전통과 현대의 융합이다. 추상 화가들은 선진 미술에 도전장을 내밀고, 그들과 당당히 어깨를 견주었다. 오늘날 단색화의 세계적 약진에서도 확인되듯이, 추상은 한국미술의 국격(國格)을 이끄는 선봉장이었다.
PartⅤ. 조각, 시대를 빚고 깎고
조각 예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격투’의 역사였다. 재료와의 격투, 후원자(patron)와의 격투다. 작품 제작에 많은 품과 시간, 공간을 요구하는 조각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예술가의 순수한 개성 표현이 가로막혀 있었다. 작품 대다수는 주문 제작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조각은 순수 미술시장보다는 공공미술에 빚지는 바가 많다. 수적 열세, 열악한 환경에서 한국 근대조각의 꽃이 피었다. 한국 근현대 조각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가 과연 몇 번이나 열렸는가. 이번 전시는 소마미술관 소장 서울올림픽공원의 야외조각과 더불어 한국 조각의 어제와 오늘을 동시에 조망하는 기회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