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제목 ‘권진규의 영원한 집’은 권진규가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 ‘영원성’과 ‘영원히 계속되는 전시장’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권진규는 흔히 리얼리즘 조각가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추구했던 것은 사실적인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혼, 영원성이었다.
권진규는 드로잉 북에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겼다. “드높은 하늘 아래서 비바람을 맞으며 층층이 큰 돌을 쌓아가며, 그 돌에 사람의 모습과 동물과 식물을 새겼던 옛 시절의 위대한 예술가들은 결코 영적인 느낌 같은 것으로 작업을 하지 않았다. 인내심을 갖고 끊임없이 자기 주변의 자연을 관찰, 연구하면서 재현을 위한 노력을 담담하게 계속함으로써, 비로소 그와 같은 영원한 미의 전당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 전시는 권진규가 작품을 통해 영원성을 구현하기 위해 마치 수행자처럼 작업에 임했던 도쿄 무사시노미술학교 시기(1949—1956)와 서울 아틀리에 시기(1959—1973)로 전시를 구성하고, 이를 다시 ‘새로운 조각’, ‘오기노 도모’, ‘동등한 인체’, ‘내면’, ‘영감(레퍼런스)’, ‘인연’, ‘귀의’의 7개 소주제로 전개하여 권진규 작품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권진규의 동물상, 두상, 인체, 여성 흉상, 부조, 불상 등 다양한 작품과 함께 2022년 전시에는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 제작 관련 다양한 자료와 사진 등을 선보인다. 창작의 순간에 남긴 메모와 기록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작가의 드로잉 북을 영인본으로 제작해 관람객이 자유롭게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이들 자료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권진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전시 공간은 권진규가 손수 지은 아틀리에에서 볼 수 있는 문, 창틀, 선반, 가구 등에서 영감을 받아 원목으로 만든 작품 좌대와 아카이브용 가구를 제작하여 마치 관람객이 직접 아틀리에에 방문해 그의 작업 세계 전반을 살펴보는 것을 느끼도록 구성했다.
이번 전시는 권진규의 작품 세계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권진규 유족이 진행하는 특별 도슨트 <나의 외삼촌, 권진규>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있다. 첫째 주와 셋째 주 목요일에는 허명회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도슨트를, 둘째 주와 넷째 주 목요일에는 허경회 (사)권진규기념사업회 대표가 도슨트와 특강을 진행한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서울시립미술관은 권진규컬렉션을 시민과 공유하고자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1층에 상설전시실을 조성하였다. 권진규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과 일본을 어렵게 오가며 대상의 본질을 구현, 영원히 사는 작품을 제작하고자 했다. 구 벨기에영사관과 권진규컬렉션의 조우는 서로의 존재와 의의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각별하다.”라며 “앞으로 권진규를 사랑하는 많은 시민, 연구자, 미술인들과 함께 만드는 새로운 이야기를 반영해 2년마다 새로운 상설전을 개최하고자 한다. 이로써 남서울미술관이 권진규의 영혼이 계속 살아 숨 쉬는 집으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