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劫)이란, 천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집채만 한 바위를 뚫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억겁(億劫)이란 말 그대로 헤아릴 수조차 없이 길고 긴 시간을 일컫는다. 오늘 소개할 조진학 작가는 우주 공간이 맺어준 억겁(億劫) 인연(因緣)을 작품으로 표현해내며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본지에서는 조진학 작가를 대구 남구 봉덕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나 불타는 예술혼으로 빚어내는 놀라운 작품세계를 취재했다.
경북 청송에서 나고 자란 조진학 작가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다. 먹고사는 게 중요했던 시대 특성상 미술을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라는 말처럼 결국 그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건축디자인을 직업으로 삼은 그는 1998년 중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미술 공부 및 사업을 병행하였는데 ‘사업가’는 자신에게 맞는 옷이 아니라는 것을 체득하여 귀국 후 2019년부터 본격적인 작업 및 국내 활동을 시작해 ‘전업 작가’로 예술혼을 그야말로 불태우고 있다. 중화권을 중심으로 이름을 알려온 조진학 작가는 귀국 후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4회의 개인전을 비롯해 다수 그룹 및 단체전에 참여해 그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사)한국미술협회, 대구미술협회, 남구미술협회, 화우반세기회 등에서 활동 중인 그는 최근 2023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원>, <비상> 작품으로 비구상(조각) 부문 및 구상(서양화) 부문에서 입상하는 영예를 안으며 뛰어난 작품세계를 공인받았다.
놀라운 우주의 시간을 작품으로 표현해
조진학 작가는 국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코로나라는 큰 시련과 함께 허리와 어깨를 크게 다쳐 작업을 하기 힘들게 되어 작업실 맞은편에 있는 봉덕동 효성한의원을 찾았다. 그런데 효성한의원 원장 선생님은 그가 가난한 작가임을 금방 알아보고 2년째 한 푼 받지 않고 지금까지 침술을 해주고 있다. 조진학 작가는 이 또한 놀라운 인연으로 보고 우주 공간과 시간, 인연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된 게 아닐까.
“옷깃을 한번 스치는데 5백 겁의 인연이 있어야 하고, 억겁의 세월을 넘어서야 평생을 함께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 순간, 이 시각 같은 공간에 있는 우리는 일천 겁 이상의 참으로 놀라운 인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저는 우주 공간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 가장 고귀한 선물, 놀라운 우주의 시간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진학 작가는 표현하고자 하는 형태의 단순화 과정에서 복잡하고 화려한 형상들을 변화하여 가장 단순한 원이라는 형태를 탄생시켰다. 가장 단순한 형태에서 표현하는 조진학 작가는 같은 맥락에서 ‘원’을 바탕으로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목탁과 동자승, 전구 등 불교 미술을 현대 미술로 표현하는 작업에 천착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는 최근 조각작품을 벽에 옮기는 작업에 한창이다. ‘조각작품도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다’라는 일념으로 이와 같은 작업에 매진 중인 조진학 작가는 이를 통해 조각과 그림의 경계선을 허물어 ‘회화 조각’의 새 지평을 열어가겠다고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이름’이 아닌 ‘작품’으로 기억되고파
“저는 다른 욕심은 없습니다. 오로지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만 가득합니다. 설령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얼마든지 작업은 계속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의식을 가지고 작업에 임해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그럼으로써 제 ‘이름’이 아닌 ‘작품’을 세상에 남기고 싶습니다.”
조진학 작가는 오는 9월 14일부터 17일까지 대구 엑스코에서 열리는 개인전 겸 대한민국 불교문화 엑스포에 참여를 확정 짓고 준비작업에 한창이며, 오는 12월에는 대전 국제 아트페어에 참가하여 수많은 관람객과 작품으로 소통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조진학 작가가 감탄사가 나올 수 있는 감동 어린 작품을 지속해서 선보여 현대인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하는 한편 고향 청송을 빛내는 작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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