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을 외치는 지구의 신음 속에서 공생의 목소리를 담는 연극이 온다. 오는 10월 5일 국립극단 연극 <당신에게 닿는 길>이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당신에게 닿는 길>은 2023 오늘의 극작가상, 2022 제40회 대한민국연극제 희곡상 등 다수의 연극상을 수상한 한민규가 극작하고 연출한 작품이다. 한민규 연출은 지난해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로 선정되어 ‘기후 위기와 예술’이라는 주제로 1년여에 걸쳐 <당신에게 닿는 길>을 개발했다. 한민규 연출은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며 시대적 사건과 인물을 종횡하는 작품들로 연극이 가지는 표현적 한계의 확장을 꾸준히 시도해왔다. <당신에게 닿는 길> 역시 연극의 장르적 매력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연극을 서사하는 연극’을 소재로 기후 위기가 만들어 낸 인류 종말을 맞이하는 한 연극 작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등장인물 ‘작가’는 작품 집필을 계기로 기후 위기로 터전을 잃은 ‘이안’과 통신한다. 20년간 단속적으로 이어지는 통신과 ‘작가’의 회상 속에서 기후 위기로 비롯된 인류의 끝이 다가온다. 2043년 현재 인류의 종말 앞에서 ‘작가’는 극장을 운영하고 연극을 공연하면서 소멸을 맞이한다. ‘작가’가 세상의 끝에서 바라본 연극과 극장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한민규 연출은 “멸종 위기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것들의 공생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종말에 닿을 때를 떠올리면 모순적으로 태초의 순간이 생각난다. 원시의 인류가 몸짓이나 벽화와 같은 순수예술로써 함께 맞닥뜨린 위기의 상황을 넘어왔듯이, 기후 위기로 인한 종말의 순간에 연극은 예술 표현물로서의 범위를 넘어선 생존을 위한 인류 최후의 소통 수단 그 자체가 될 수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작품 개발의 동기를 밝혔다.
극이 보여주는 지구 최후의 시나리오는 결코 허황되지 않다. 올여름 길게 이어진 장마와 폭우,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지구 반대편의 기온은 연일 40도를 넘어서면서 폭염과 산불로 많은 사람이 고통받았다. <당신에게 닿는 길>은 실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어쩌면 머지않아 마주할 법한 광경 속에서 인간으로서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작품이다.
<당신에게 닿는 길>은 관객이 기후 위기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인류 최후의 광경을 체감할 수 있도록 공감각적 무대 구성에 집중했다. 종말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과 인물의 심리 상태를 긴 일자형 무대로 표현했다. 연기로 채워진 무대는 1막에서 서로 이어지는 인물들의 감정과 호흡을 담고 종말을 배경으로 하는 2막에서는 고립감을 준다. 무대 양쪽 끝에 멸망의 현상을 보여주는 영상을 투사하고, 배우들은 비치는 영상 위로 인류의 마지막을 앞둔 공허하고 무력하며 처절한 움직임을 더할 예정이다. 재난의 파열음, 날카로운 사이렌의 고성, 섬광의 발소리, 폭풍우와 빗소리, 대지의 진동음 등 무대를 하나의 지구와 인류의 서식처로 구현하기 위해 소리 질감 분석 등 음향 효과에도 공을 들였다.
<당신에게 닿는 길>은 10월 29일까지 이어진다. 10월 15일에는 공연 종료 후 연출 한민규, 배우 우범진, 배우 이상은, 배우 이다혜가 참석하는 ‘예술가와의 대화’를 진행한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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