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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조각이 아닌 사진 조각

<투명한 공간, 사이 거닐기> 사비나미술관 | 2023년 11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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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미술관은 2023년 하반기 기획전으로 사진, 조각, 건축 요소를 ‘사진 조각’의 새로운 형식으로 도출하여 독창적 예술세계를 구축해 온 고명근 작가의 전시를 개최한다. 본 전시는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30여 년간의 작업 세계를 아우르는 중간 회고전 성격의 개인전으로 총 201점이 출품됐다. 시기적, 형식적 특성에 따라 배치된 전시품들이 개별 작품의 이해를 넘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과 세계관을 새롭고도 폭넓게 조망할 수 있도록 한다. 관객이 LED 조명이 설치된 구조물 위에 일렬로 진열된 작품의 동선을 따라가며 시기별 특징과 변모 양상, 변화에 영향을 준 요인 등을 비교 분석하는 아카이브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기획됐다.

2층에는 1980년대 말 작가의 뉴욕 유학 시절 초기 작품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건물 Building> 연작이 배치됐다. 뉴욕 브루클린의 불타고 부서진 빈집들을 촬영해 인화한 이미지를 나무 합판의 입방체 구조물에 콜라주 형식으로 붙이고 그 위에 레진을 부어 고착한 1996년 작품(작가가 자신의 작업 과정 중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꼽는)을 비롯한 초기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 

2000년부터 시도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투명성과 가벼움의 개념을 투명 사진 다면체 건축물로 구현한 작품들도 살펴볼 수 있다. 제작기법을 소개하자면 작가가 세계 곳곳을 다니며 건축물과 풍경을 촬영한 사진들을 투명 소재인 OHP 필름에 출력해 플렉시글라스에 압착시킨 후 뜨겁게 달군 인두로 각 패널의 모서리를 용접하여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사라진 유동적이고 연속된 공간으로 만들어낸다. 

사진 이미지 자체가 투명한 입체구조물을 이루는 작품들은 투명성과 가벼움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교차, 대칭, 중첩 효과를 낳으며 감상자의 움직임이나 화면을 보는 시점과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다의적, 가변적 특징을 지니게 된다. ‘불투명하고 무거운 작업’에서 ‘투명하고 가벼운 작업’으로 바뀌게 된 시기적 변천 과정의 비교를 통해 단속적 변화가 아닌 다양한 매체와 표현기법을 활용한 조형 실험을 바탕으로 앞선 시기의 작업이 뒤 시기의 작업으로 발전하는 연속적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3층에는 자연 이미지를 채집해 투명 사진 조각으로 제시한 <자연 Nature> 연작과 인체 조각상 이미지를 활용한 <몸 Body> 연작을 소개한다. 작가는 세 가지 주제의 연작을 시도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건물 Building> 연작은 건축이 인간의 창조물이자 물리적 시간을 간직한다는 점에서 ‘몸의 확장이며 인간의 표현’이라는 인식이 반영됐다. <자연 Nature> 연작에는 자연이 인간의 시작이며 삶의 조건이라는 자연관이 표현됐다. 미니어처처럼 보일 수 있는 건물 연작의 한계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몸 Body> 연작은 ‘몸은 그 자체로 인간의 일차적 한계이자 존재의 조건’이며, ‘기억, 감정, 의지를 담은 인간의 외피로서 의식이 거주하는 집’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뉴욕 유학 시절 사진을 공부한 복수전공자로서 조각상 이미지를 많이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업에 사용하게 되었다. 건물과 자연, 몸 시리즈를 발전시키면서 미묘한 형태 변화가 이루어졌다. 소재가 바뀌면 형태가 이를 수렴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건물, 자연, 몸 연작은 건축, 자연, 인간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상호 관계성과 상호 작용성으로 연결된 총체적 공간개념을 제시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층에는 최근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삼부작 Trilogy> 연작을 선보인다. 작가 스스로 ‘벽걸이 작업’으로 명명한 작품들은 2, 3층에 전시된 투명 사진으로 이뤄진 다면체들의 전개도처럼 느껴진다. 삼부작은 세 개의 장소에서 포착한 세 부분으로 나눠진 다양한 사진 이미지(건물의 실내, 하늘, 물, 인물, 패턴)가 자유롭게 뒤섞여 하나로 연결되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특징을 지녔다. ‘벽걸이 작업”은 사진의 속성인 평면성과 시간성, 조각과 건축의 특성인 입체성과 공간성을 혼합하여 시공간을 교란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데 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는 단일 감각을 복합적 감각 경험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평면성과 입체성의 교란을 활용한 조형적 왜곡 기법은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관객의 흥미와 몰입도를 높여준다. 현실적, 물리적으로 모순되거나 불가능한 상황을 연출해 감상자를 시각적 혼란에 빠뜨리는데 이러한 착시효과로 인한 조형성 왜곡과 변형, 과장이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며, 복합적인 감각 능력을 촉진하거나 강화한다. 두 번째로 시간과 공간의 교란을 활용한 ’시공간의 왜곡‘ 기법은 시간과 공간의 관계나 특성을 변형시켜 관객이 시공간의 개념을 다르게 해석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시공간 축소나 확장, 과거와 현재의 중첩, 시간의 동결에 의한 움직임과 정지(순간적 동작과 찰나적 순간)의 대비를 강조하고, 시간의 흐름이 겹치거나 교차하면서 작품 내에서 시간의 비선형적 흐름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여러 시간과 장소의 혼합,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지각이 뒤섞여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찰나와 몽환,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가게 된다. 찰나와 몽환은 작가의 삶과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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