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가면 바다에서 시작된 바람이 옷깃을 팔랑이게 한다. 또한 부산의 86번 시내버스 창밖에 펼쳐진 산복도로의 덧없는 풍경을 화폭에 아름답게 담아내는 작가도 있다. 임현주 작가는 독특한 색조와 질감을 바탕으로 산복도로의 풍경에서 만나는 사물들에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자기 몫의 계단을 찾아 오르며 눈길을 끌고 있다. 본지에서는 자신이 자란 ‘부산’이라는 도시를 매개로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임현주 작가를 인터뷰했다.
골목과 계단과 집들을 그리는 작가는 수없이 많지만 이를 유니크하게 그리는 작가는 아주 드물다. 그런 점에서 임현주 작가는 특별하다. 임 작가는 과거 해외 유학 시절 약 3,000점 이상의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을 그렸으며, 이는 현재 그녀 작품세계의 든든한 밑받침이 되고 있다. 또한, 어린 시절 동화를 참 많이 읽기도 하였으며, 실제로 신춘문예 등단 작가이기도 한 임현주 작가는 이러한 문학적 소양이 작품에 녹아든 특유의 동화적 화풍으로 관람객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20여 년에 접어든 임 작가는 총 43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내외 다수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아울러 그녀는 현재 부산미술협회, 남부미술협회, 31작가회, SARA 산미술연구회, 신미술회 등 회원인 동시에 지난 4월 1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온갤러리에서 43번째 개인전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아리아드네의 실’에서 선의 영감을 얻어
“저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아리아드네의 실’에서 선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아리아드네의 실’은 급박한 목숨의 선이었으나, 일상의 골목과 층계에서는 날마다의 삶으로 선을 읽었죠. 무릇 계단과 골목이란 나와 너를 구분하는 경계로 시작되었건만, 결국은 통로가 되고 소통이 되고 연결이 됩니다. 저는 골목과 층계에서 삶의 역경을 읽습니다.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에 따라 사람의 격조가 달라집니다. 자신이 가닿을 수 있는 만큼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임현주 작가의 작품을 보면 골목과 계단을 끼고 서 있는 울퉁불퉁한 곡선의 집들을 쉬이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곡선의 집들은 청자의 매병과 주병의 곡선에서 초대된 것이며, 비좁은 골목에 어깨를 맞댄 집들의 곡선은 왠지 모르게 조화롭다. 이처럼 임현주 작가는 동화적 화풍으로 집을 비롯해 오솔길, 나무 등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동화 속 한 마을에 들어온 듯한 인상을 지니게 한다. 어디에선가 우리가 스스로 허술해져 있을 때, 집들 사이의 골목과 층계가 빈틈을 메꾸어 주거나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는 임 작가는 모든 하루치의 분량에서 축복을 세며, 산복도로에 잇닿은 계단과 골목을 오늘도 배회한다.
오는 9월 뉴욕 아트페어 참가
“역경의 마디에서 꽃이 피고, 생의 역경에서 뜻을 읽어냅니다. 저는 계단과 골목이 엮어 내는 일상을, 제 몫으로 초대하여 여기저기 빨래처럼 널어놓습니다. 저는 산복도로의 덧없는 풍경에서 마주하는 사물들에 정중히 인사를 건네며 오늘도 제 몫의 계단을 찾아 오르겠습니다.”
부산보다 서울에서, 서울보다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임현주 작가는 오는 9월 뉴욕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참가를 확정 짓고 작품 준비에 한창이다. 이를 위해 매일 같이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하루 8시간씩 작업하는 그녀는 여기서 더 나아가 뉴욕 개인전도 계획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삶을 닮은 곡선의 집들에 이야기를 채워 넣는 임현주 작가가 앞으로도 자신의 작품명처럼 <있었는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시절>을 화폭으로 기록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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