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수는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교류 속에서 시대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다. 현전하는 고대, 중세 유물의 수가 극히 한정적인 탓에 흔히 ‘전통 자수’로 불리는 작품의 대부분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조선 시대 여성들이 제작하고 향유한 규방 공예로서의 자수이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자수의 변화상은 개항, 근대화 및 서구화, 전쟁, 분단, 산업화, 세계화 등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주류 미술사의 관심 밖에 놓여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주변화된 자수 실천이 시대별로 어떻게 전개해 왔는지 살펴본다. 전시는 4부로 구성된다.
1부 ‘백번 단련한 바늘로 수놓고’는 자수 실천에 변화의 조짐이 일어났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제작된 ‘전통 자수’로 시작한다. 생활 자수, 복식 자수, 수불(繡佛), 각종 의례 및 감상 자수(특히 병풍) 등 다양한 전통 자수를 선보인다. 또한 개항 이후 ‘공예’ 개념이 도입되면서 자수도 자급자족되는 규방 자수에 머물지 않고, 근대적인 문명국가를 상징하는 기술, 공업, 산업의 일환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민간 여성들이 제작한 민수(民繡)이자 전통 자수인 <자수 십장생도 병풍>(19세기)과 궁녀들이 수놓은 궁수(宮繡)이자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보료>(19세기) 등 양자의 정수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2부 ‘그림 갓흔 자수’는 20세기 초 공교육과 전시를 통해 ‘미술공예’로 거듭난 자수 실천의 변화를 살펴본다. 일제강점기 적지 않은 수의 한국 여성들이 일본 ‘여자미술전문학교(현 여자미술대학, 이하 조시비(女子美))’에 유학하여 자수를 전공했다. 전시는 박을복, 나사균 등의 자수 습작, 졸업작품과 이를 위한 밑그림 및 관련 자료 등을 소개하여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유학생들의 활동을 조명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지도받았던 조선 여학생들의 작품들도 함께 소개한다.
3부 ‘우주를 수건으로 삼고’는 광복 이후 아카데미 안에서 진행된 소위 창작공예, 즉 현대공예로서 자수의 면모를 살핀다. 해방 직후 이화여자대학교에 국내 처음으로 자수과가 설치되었으며, 1950년대 이후 조시비와 이화여자대학교 출신 작가들의 다양한 활동과 작업은 한국 자수가 조시비 자수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과정의 전모를 보여준다. 추상이라는 새로운 조형 언어를 적극 수용한 송정인의 <작품 A>(1965), 김인숙의 <계절 Ⅱ>(1975) 등을 통해 이 같은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4부 ‘전통미의 현대화’에서는 한국전쟁 후 자수가 근대화, 산업화 시대에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산업 공예로, 그리고 보존・계승해야 할 전통공예로 부각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나 대학 수업 등에서 자수의 위상이 줄어든 것과 달리 아카데미 밖에서 ‘동양자수’는 한국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관광상품이자 주요 수출 품목으로 떠올랐다. 자수에 대한 관심은 점차 본격적인 수집, 연구, 전시로 연결되며,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으로까지 이어진다. 전시에서 한상수의 <궁중자수 모란도 병풍>(1978), 최유현의 <팔상도>(1987-1997) 등 전통의 계승과 현대화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국가무형문화재 자수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국내외 여러 기관과 작가, 소장자, 연구자의 적극적인 협조로 만들어진 대규모 전시”라며, “이번 전시가 자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을 촉발시키고, 자수가 지닌 동시대적 의미를 미술사적으로 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