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디지털 매체와 대치 상태인 책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현했다는 평을 받는 박종태 작가는 자신의 서재를 가득 채운 책들을 파쇄하여 그간 세상에 없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에 관한 관념 허물기 차원에서 종이 위에 기록된 수많은 글씨를 인위적으로 해체하여 흩트리고 다시 재배열하며, 박종태 작가의 작품은 파쇄한 책과 종이를 안료와 수성 접착제를 섞어 판넬 위에 손으로 층층이 쌓아 올려 굳히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처럼 파쇄지를 활용한 감각적인 입체작업으로 국내 화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 박종태 작가는 영남대 미술대학원에서 박사를 수료했으며, 개인전 12회 및 다수 국내외 전시와 단체전에 참여했다. 또한, 그는 현재 청도군 미술협회 회장, 빈조형 대표직을 맡고 있으며, 경북예술인상과 한국을 이끄는 혁신리더상 등을 수상하며 뛰어난 작품 세계를 인정받았다.
파괴와 창조의 변증법적 관계
책을 파쇄하는 과정은 기존의 형태를 부정하는 파괴 행위이지만, 이를 새로운 작품으로 재구성하면서 창조의 의미를 부여한다. 즉, 종이를 파쇄하는 과정은 예술적으로 파괴와 창조의 변증법적 관계를 탐구하는 강렬한 표현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문서나 책은 특정한 메시지와 구조를 가진 매체이지만, 이를 파쇄함으로써 과거의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게 됩니다. 파괴는 단순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철학적 관점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현대 사회에서 변화와 혁신이 기존 질서의 붕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20세기 후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인 자크 데리다는 해체가 단순히 파괴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해체는 고정된 구조를 깨뜨리면서 그 안에 숨어 있던 잠재성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데리다는 언어와 텍스트가 단일한 중심적 의미에 고정될 수 없으며, 항상 다층적이고 열려 있는 해석 가능성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박종태 작가의 작업은 물질적 해체를 통해 데리다의 철학적 개념을 시각적이고 경험적으로 구현하는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박종태 작가의 작업이 관객의 경험과 해석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데리다의 열려 있는 의미의 다층성과 일치한다. 즉, 종이는 종종 정보를 담는 매체로, 본래의 텍스트나 이미지가 고유의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되지만, 박종태 작가는 이를 분쇄함으로써 의미의 중심을 해체하고, 남은 조각들로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 이는 본래의 의미를 부정하면서도, 그 파괴된 잔해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된다.
국내외 넘나들며 작품활동 펼칠 것
박종태 작가는 올해도 여느 해만큼이나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펼쳤다. 그는 올해를 라우갤러리 초대전으로 시작하여 최근에는 이탈리아 마칼미술관에서 개최된 ‘2024 Macal Museum exhibition’ 기획전시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널리 알려 나가고 있다.
“제가 종이작업을 해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국내 여러 기획전 및 아트페어를 통해 제 작품을 알리고 있으며, 해외에도 조금씩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유럽에서 제 작품이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것에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국내는 물론이고 유럽에도 초점을 맞춰 전시를 이어가겠습니다.”
실제로 박종태 작가는 스위스 내 2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쿤스트 취리히 아트페어의 초청 작가일 뿐만 아니라 스위스 미술 매체 ‘INEWS’로부터 극찬받는 등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도 박종태 작가가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 세계를 통해 세계 속의 작가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해본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