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다원예술이 진행해 온 프로그램 중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2020)에서는 미술관의 접근성과 포용성을 확장하는 실험을, <멀티버스>(2021)에서는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감각과 사유 방식을 탐구했다. <미술관-탄소-프로젝트>(2022)는 미술관의 환경적 책임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시작했으며, <전자적 숲; 소진된 인간>(2023)에서는 현대 디지털 사회에서 사색, 명상, 평온의 가능성을 다루었다. 그리고 지난해 <우주 엘리베이터>(2024)에서는 우주를 향한 인간의 상상력과 욕망을 예술적 관점에서 조명했다.
올해 MMCA 다원예술 <숲>은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을 바꾸는 인류세 시대에 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던지고, 인간과 숲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는 프로젝트이다. 2025년 5월부터 2026년 1월까지 8팀의 퍼포먼스, 공연, 무용, 영화, 설치 등 다학제적인 프로젝트를 차례로 선보인다. 그간 다원예술에서 다루고 제시한 다양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여 숲의 양상을 다각도로 이야기해보고, 동시대 사회에서 숲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여러 예술로 다뤄보고자 한다.
서울과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화감독이자 시각예술가인 임고은과 현대 음악, 연극, 설치 미술의 교차점에서 독보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 온 작곡가이자 공연연출가 하이너 괴벨스는 수필가이자 철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수필집 『월든(Walden)』의 사유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인다. 임고은의 신작 <그림자-숲>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고립과 성찰 속에서 발견한 내밀한 세계의 흔적들을 포착하여, 이를 빛과 그림자의 풍경으로 변환시킨다. 이 작품은 숲의 물질성과 비물질성 사이를 오가며 현대인의 단절된 자연 경험을 몸과 감각으로 재연결하는 다층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하이너 괴벨스는 명상적이면서도 세밀하고, 압도적이면서도 미세한 ‘목소리의 정원’이자, 빛과 영상으로 구축되는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겐코-안 03062>로 참여한다. 이 작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관찰적 태도, 존 케이지의 우연성, 로버트 루트만의 접근법을 현대적으로 융합하여, 관객이 소리의 정원에서 자신만의 청각적 사색을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정동을 구현한다.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와 람풍 그리고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카티아 엥겔 & 아리 에르산디는 <후탄(숲)> 작업에서 인도네시아의 룽간 숲에서 24시간 동안 녹음한 소리를 활용한다. 숲의 소리가 주는 감정적, 심리적, 그리고 사회적 영향에 주목한 작업으로, 세 명의 무용수가 이 소리에 반응하여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관객들은 소리와 움직임이 결합된 공간을 경험한다. 관객들은 숲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느끼게 될 것이다. 영상, 퍼포먼스,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작가 곽소진은 영상 작품 <휘-판>에서 급격하게 개체수가 증가한 야생사슴들이 안마도라는 섬의 인간 거주자 수를 초과하게 된 현상을 포착한다. 이 작품은 사슴과 인간의 영역이 뒤섞인 기묘한 공존의 풍경을 담아낸다. 이로 인해 형성된 생태적 (불)균형은 기존의 경계가 휘어지고 재편되는 과정을 시청각적으로 드러낸다. 홍이현숙은 퍼포먼스 <오소리 A씨의 초대 2>에서 지하 세계의 거주자인 오소리를 매개로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는 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는 시도를 보여준다. 작품은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미세한 진동과 울림을 신체적 경험으로 변환시키며,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 사이에 세계의 교차지점을 예술로 드러내고자 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MMCA 다원예술 <숲>은 인류세 시대에 미술관과 예술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대표 프로젝트”라며, “현대미술의 다양한 실험들로 관객들이 숲과 인간, 예술과 자연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사유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