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개념미술은 물질성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작품을 순수한 언어 체계로 환원하기보다 ‘언어와 개념을 통한 사고’와 ‘재료 및 형태’를 함께 다루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1970~80년대 언어·논리적 실험을 통해 미술의 본질과 존재를 묻는 작업이 전개되었고 1990년 전후에는 현실을 새롭게 사유하는 방법론이자 태도로서 ‘개념적 미술’, ‘개념주의’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이번 전시는 1970~90년대 한국미술의 개념적 전환을 살피는 동시에 개념미술의 국제적인 확산 속에서 한국 개념미술의 동시대성과 특수성을 조명하면서 개념미술을 인간과 세계를 새롭게 사유하고자 했던 복합적인 시도들로서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전시 제목은 한국 개념미술을 하나의 고정된 개념으로 묶기보다 작품마다 펼쳐지는 다양한 의미와 해석의 층위를 열어두려는 기획 의도를 담았다.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는 ‘언어·논리·행위’, ‘사물과 언어’, ‘지도와 측정’, ‘기호의 조정자들’ 등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언어·논리·행위’에서는 1970~90년대 신체 행위와 언어, 논리를 결합해 어떻게 미술을 감각적 재현이 아닌 사유의 구조로 전환하고자 했는지를 살펴본다. 이건용, 김용민, 성능경, 윤진섭 등 Space & Time 조형미술학회(ST, 1969~81) 작가들은 우연성과 즉흥성을 배제한 채 반복적이고 자기 지시적인 행위를 통해 일상의 몸짓을 하나의 ‘사건(event)’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세계에 대한 통찰에 이르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1976년 <이벤트 로지컬>전에 출품되었던 이건용의 〈장소의 논리〉(1975), 성능경의 〈수축과 팽창〉(1976), 김용민의 〈물걸레〉(1976)를 소개하고, 김용민 아카이브를 최초로 공개한다.
두 번째, ‘사물과 언어’에서는 1970~90년대 한국 개념미술이 사물과 언어 사이의 불완전한 관계를 어떻게 드러내며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의미 체계를 다시 질문하게 만들었는지 살펴본다. 안규철, 박이소, 김범, 우순옥, 정서영 등의 작업은 언어가 사물과 세계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안규철의 〈무명 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1991), 김범의 〈지렁이 공포게임〉(1994), 정서영의 〈전망대〉(1999), 박현기의 〈무제〉(1983) 등을 통해 언어와 사물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한 작업들을 소개한다.
세 번째, ‘지도와 측정’에서는 1970년대 이후 한국 개념미술이 지도와 계량기, 시계 등 세계를 질서화하는 표준 체계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어떻게 의심했는지를 살펴본다. 곽덕준, 김차섭, 박이소, 성능경, 오인환, 이건용 등은 지도와 좌표, 시계와 단위 같은 측정의 언어를 해체하고 전도함으로써, 세계를 객관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흔들었다. 성능경의 〈세계전도(世界顚倒)〉(1974), 김차섭의 〈바른 방향(삼부작)〉(1988), 박이소의 〈드넓은 세상〉(2003), 곽덕준의 〈3개의 계량기와 돌〉(1970), 오인환의 〈만남의 시간〉(1999– ) 등을 통해 지도와 측정 체계가 지닌 임의성과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네 번째, ‘기호의 조정자들’에서는 신문, 광고, 잡지, 통계 등 이미 존재하는 기호 체계를 재배열하고 편집하며 의미의 방향을 전환하는 개념적 작업들을 소개한다. 신문과 잡지, 기존 작품의 일부를 인용해 문장을 지우거나 기호를 재배치함으로써 기호 체계의 가변성을 드러내고, 그 이면에 작동하는 권위를 노출시킨 김용익, 김용철, 김소라, 김홍석, 성능경, 조경숙, 주재환 등의 작업을 소개한다.
한편, 전시 기간 중 출품작에 얽힌 개념의 문제를 나누는 ‘작가의 수업’이 연계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오는 8월 19일에는 알렉산더 알베로, 레이코 토미 등을 비롯하여 국내외 개념미술 전문가들이 발표자로 참여하는 국제 심포지엄 ‘개념과 미술: 한국과 아시아의 맥락에서’도 예정되어 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가 한국 개념미술의 역사와 동시대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한국현대미술 담론을 더욱 심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