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진: 지나가는 자리>는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의 ‘한국 대표 조각가’ 시리즈의 두 번째 전시로, 한국과 뉴욕, 세계 각지의 장소와 공동체를 오가며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 온 조숙진의 예술적 궤적을 한국 현대미술의 맥락과 확장된 국제적 지평에서 새롭게 다룬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25년 ‘한국 대표 조각가’시리즈를 신설하여 한국 현대조각의 지평을 넓혀 온 작가들을 동시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고찰하고,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를 연례 개최하고 있다. 첫 번째 전시는 한국 추상 조각의 전개에서 주목할 만한 발자취를 남긴 전국광(1945~1990) 조각가의 개인전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전시는 약 20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조숙진의 개인전으로, 작가의 전 시기 작업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1980년대 초 나무 합판을 활용한 초기 작업부터 뉴욕 시기 설치와 조각, 미공개 드로잉과 종이 콜라주, 공공 프로젝트 아카이브, 중남미 〈아트 하우스 채플〉 시리즈, 인천 굴업도에서 진행한 신작까지 작품과 자료 100여 점을 폭넓게 선보인다.
전시는 주제별 구성을 통해 조숙진의 존재론적 통찰과 일관된 작업 태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전시는 2층 전시장과 야외 정원에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세 개의 파트로 이어지며, 전시실 이외에도 계단을 비롯한 공용공간을 유기적으로 활용해 작가의 대표작과 장소특정적 작업을 선보인다.
[프롤로그: 목격자]는 나무와 버려진 재료를 인간의 시간을 지켜보는 존재로 상상해 온 작가의 사유를 4점의 야외 설치 신작 <삶의 색채-모여라 꽃!>, <기억>, <둥글게 둥글게>, <목격자 IV>로 제시한다. [파트 1: 존재와 비존재]는 〈노바디〉, 〈엘레지〉 그리고 신작 설치 <숨겨진 이야기들> 등 주요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 존재와 부재의 관계를 탐구해 온 작가의 사유를 살펴본다.
[파트 2: 공간 사이]는 조숙진이 나무 합판을 작품의 재료로 처음 도입한 1983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의 작업을 통해, 물질과 물질 사이의 틈, 빈 공간, 물질 너머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뉴욕 시기 설치 작업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조명한다. [파트 3: 만물의 이치]는 미공개 드로잉과 종이 콜라주, 영상, 설치 작업을 통해 조숙진의 개인적인 경험과 내밀한 기억을 조명하며, 모든 존재가 생성과 소멸의 과정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에필로그: 하나를 이루는 세계]는 1999년부터 세계 각지의 공동체와 함께해 온 공공 프로젝트를 다양한 아카이브를 통해 조망한다. 중남미 여러 지역에서 실현된 〈아트 하우스 채플〉 시리즈와 굴업도 신작 〈삶의 색채-모여라 꽃!〉에 이르는 작업의 아카이브를 통해 장소와 공동체, 버려진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확장되어 온 조숙진의 예술적 실천을 살펴본다.
전시는 그동안 부분적으로만 소개되었던 조숙진의 작업을 하나의 흐름 안에서 다시 읽어보는 기회로서, 작업 초기 한국에서의 재료 실험과 존재에 대한 사유가 미국 이주 후에도 단절되지 않고 장소, 사물, 공동체를 향한 실천으로 일관되게 확장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국제무대에서 오랜 시간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 온 조숙진의 예술적 여정을 폭넓게 조망하는 기획”이라며, “조숙진의 작업을 한국 현대미술사와 국제적 지형 속에서 새롭게 맥락화하여 그 가치를 재조명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