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는 ‘시칠리아에 온 편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에서 짐작하겠지만 ‘여행’이 주된 소재가 된다. 하지만 삶의 정점에서 스스로 내려선 뒤 향한 시칠리아는 그에게 낭만적인 여행지가 아니라 내면을 투사한 판타지적 장소이면서 동시에 현실로 거듭난다. 그는 한 사람의 시칠리아 주민이 되어 유유자적 공간을 누비며 시칠리아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다. 이 이국적인 외모의 ‘주민’은 시칠리아의 문화와 유적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대신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향한다. 여행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책 속의 글들은 지금까지 그 어디에서도 보여준 적이 없는 인간 김영하의 진솔한 면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대단히 성공한 사람, 김영하
언젠가 어느 글에서 김영하 작가는 아내가 자신에게 ‘사이보그’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글을 읽은 독자들 중에는 잘 웃지 않을 것 같은 그의 무표정한 얼굴과 대상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는 그의 소설 속 도회적 인물들을 떠올리며 그것이 그에게 참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실상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면서도 다소 냉소적이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소설 속 인물들에 김영하의 품성이 어느 정도는 투영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1995년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그 이듬해에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김영하 작가는 우리나라 문학계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후 그는 항상 우리 문학계의 중심에 있었다. 계절마다 권위 있는 문학잡지들에는 그의 작품이 실렸고 그의 소설은 한국문학의 위기를 운운하는 가운데에서도 이례적으로 꽤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그리고 몇몇 작품들은 연극 무대에 올랐고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그는 전업 작가가 아니었다. 모 사립대학교의 한국어학당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웬만한 전업 작가 이상으로 왕성한 상상력을 소설로 구현해내고 있었다. 데뷔한 지 만 13년이 지나는 동안 그는 다섯 권의 장편소설과 세 권의 작품집, 여섯 권의 산문집을 출간했다. 게다가 어느새 그는 국립 예술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있었고, 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라디오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간간이 TV에 얼굴을 내비치기도 했다. ‘사이보그’라는 별명은 이제 일인다역을 척척 해내는 그의 무한할 것 같은, 말 그대로 로봇 같은 그의 능력을 두고 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진 것이 많았기에 너무 무거웠던 삶
김영하 작가는 ‘눈앞의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몇 가지 역할을 해내느라 대단히 바빴고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져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허둥지둥 학교로 향하고 저녁이면 방송 녹음을 위해 여의도로 향했다. 밤 11시 반에 집에 도착해 주차할 공간을 찾아 헤매야 했다. 틈틈이 연재소설을 써야 했고, 수업 준비를 해야 했다. 이 시절의 나날을 김영하 작가는 ‘뒤통수 어딘가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것 같았다고 말한다. “다 그만둬. 너무 힘들어 보여.”아내가 말했다. 남편의 삶이 위태로워 보이기 시작한 탓이었다. 그의 일상에는 가진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의 숙명적인 피곤함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하나씩 내려놓았다. 학교에 사직서를 내고, 대학 교수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었던 몇 가지 혜택도 포기했다. 그러자 본의 아니게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마침 연재하던 소설도 막바지였다. 그는 캐나다 밴쿠버의 한 대학에 초청장을 보내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각종 자동이체와 약정을 해지했다. 서재를 메우고 있던 책과 입지 않는 옷들도 내다 팔거나 버렸다. 그러는 동안 살기 위해 ‘그것’을 취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달콤한 편안함에 취해 자신이 그 속에 안주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려놓는 동안 다시 ‘나’를 만나다
1년 동안 머물 예정으로 캐나다로 향하기 직전인 2008년 5월, 그는 아내와 함께 시칠리아로 향했다. 2007년 12월 모 방송국 PD와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인연을 맺은 곳이었다. 다시 찾은 시칠리아로 향하는 동안 이탈리아 철도의 파업과 주먹구구식 철도 시스템 때문에 갖은 애를 먹어야 했다. 이탈리아 철도원들은 만만디였고, 때문에 여행 계획은 늘 차질을 빚었다. 하지만 어렵사리 도착한 시칠리아는 김영하 작가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주었다. 그곳에는 어릴 적부터 상상해온 이탈리아의 원형이 있었다. 신전과 극장, 뜨거운 햇살과 푸른 바다, 무뚝뚝하지만 정이 많은 사람들, 신화와 전설, 그리고 마음속에 어린 예술가를 키우던 ‘김영하’가 거기에 있었다. 그의 글들은 정착하지 않음에서 오는 불안과 얽매이지 않음에서 오는 자유로움이 묘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진정 내가 서 있어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 가지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삶의 공허함이 찾아오는 것은 부족할 때가 많이 가졌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닌지를 생각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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