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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박근혜 대통령 | 2014년 07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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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1952년 2월 2일 대구시 삼덕동에서 故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첫딸로 태어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1958년 장충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는 역사소설을 즐겨 읽었으며 특히 좋아했던 책은 삼국지, 좋아했던 등장인물은 조자룡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61년 5·16 쿠데타가 일어났다. 2년 뒤인 1963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된 아버지를 따라 그녀의 가족은 청와대에서 살게 되었다. 육영수 여사는 딸이 또래와 같이 평범하게 학창 시절을 보내기를 희망했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자가용 없이 용산에 있던 학교와 청와대를 오갔다. 중학교 2학년의 박근혜는 통학 길을 오가는 전차를 탔다. 대통령 성심여중과 성심여고를 거치는 동안 그녀의 성적은 늘 1등이었다. 어머니는 사학과에 가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산업사회의 역군이 되고 싶다.”는 포부로 1970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서울국립극장 단상을 향해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첫 번째 총탄은 대통령을 비켜 갔고 이어 날아온 두 번째 총탄은 대통령이 아닌 영부인을 맞혔다. 이날 저녁 7시, 육영수 여사는 일본 여권을 지닌 간첩 문세광의 저격으로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때 박근혜 대통령은 프랑스에 있었다. 급히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고 공항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의 죽음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가판대의 신문을 보니 'Madam Park, Assassinated.'(육영수 여사 암살되다.)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칼이 심장 깊숙이 꽂힌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22살의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피살 사건 후 단 엿새 만에 ‘영부인배 쟁탈 어머니 배구 대회’에 어머니를 대신해 참석했다. 그녀는 이 시절을 두고 ‘바쁜 꿀벌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고 기록했다. 하루에도 수백 통씩 청와대에 날아오는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하고 잠이 들었다. 그녀는 6년간 아버지가 기업체를 방문하거나 국토 시찰을 나설 때 외국 사절을 만날 때 수행했고 전국 각지의 학교를 돌며 새마을 운동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10·26, 다시 비극을 맛보다
박근혜 대통령은 1979년 10월 27일 새벽, 비서실장에게 아버지의 피살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핏물이 가시지 않은 아버지의 옷을 빨며 남들이 평생 울 만큼의 눈물을 흘렸다.’고 그녀는 자서전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후 시간에 대해 이렇게 썼다. 1979년 11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두 동생을 데리고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그녀의 청와대 시절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당시 나이는 27세였다. 10·26 후부터 1998년 정치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흔히 ‘은둔생활’, ‘칩거’ 등의 단어로 일컫는다. 

한나라당의 구원투수가 되다
1997년 IMF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처럼 어이없이 무너지나’ 하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녀가 정계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2004년 봄,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역풍으로 위기를 맞은 한나라당의 대표로 취임해 구원투수가 됐다. 전국 각지를 찾아다니며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겠다.”고 호소했다. 그 결과 2004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으며 기사회생 했다. 2004년 총선 이후 ‘위기에 강하다.’는 평가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2006년 지방선거 유세에서 얼굴이 찢기는 피습 사건을 당해 대수술을 한 후, 병실에서 눈을 뜬 그녀가 가장 먼저 “대전은요?”라고 물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피습 당시 대전시장 후보 지지유세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수첩을 들고 각종 공식석상에 나서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었다. 그녀는 ‘수첩공주’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수첩에 중요한 사안을 꼼꼼히 기록하고 참고해 협의를 할 때 발언했다.

국민행복을 위한 경제계획
최근 국무총리 후보의 연이은 낙마, 정홍원 총리 유임 등 국정 난맥이 가속화되면서 박근혜 정부는 큰 상처를 입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경질됐던 정홍원 총리가 유임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개조 의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전 책임총리제와 책임장관제를 강하게 내세우는 등 내각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통령 중심제에 따른 폐해 지적이 늘자 대통령 1인에 대한 권력집중을 줄이고 이를 분산하려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2년차에 접어든 현재 세간의 평가는 현 정부가 과거보다 중앙집권화 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의견이 일고 있다.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수석진의 힘이 커지고 있는 반면, 총리를 비롯한 각 부처 장관들의 경우 과거 정권에 비해 그 권한이 더욱 축소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와 잇단 인사 실패로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 운운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여느 정권과는 달리 국민들의 공고한 지지를 바탕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소신 있게 흔들리지 않고 국정의 운영에서 중심을 잡아 비전으로 나를 끌고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교만은 안 된다. 대통령은 지지자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겸허히 듣는 마음가짐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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