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열망 속에 문화라는 패러다임 자체가 저항수단이며 인본적 가치로 천착되던 1980년대 중반. 전주에는 ‘전통문화사랑모임’이라는 단체가 문화적 명맥을 잇고 있었다. 순수 문화운동단체였던 이 모임이 지니는 의미는 중요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주의 공익적 문화 활동과 부가가치, 문화콘텐츠를 주도하는 (사)이음의 모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2년까지 전통문화와 공연, 산조예술제, 전통술박물관, 전주한옥생활체험관은 물론 한옥마을마임축제 등의 크고 작은 문화의 현장에 ‘전통문화사랑모임’이 있었다. 김병수 대표는 말한다. “고(故) 이동엽 선배님의 노력이 컸다. 전주 지역의 농민, 장인, 소리꾼 등 각 분야의 문화인들과 더불어 풍류놀이와 뒷풀이를 벌이곤 했던 이동엽 선배. 그 분과 함께 86년부터 전주의 문화자료를 정리했던 게 오늘에 이르렀다.” 소리꾼들을 모아 격려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고(故)이동엽 씨와 김병수 대표. 그 당시 함께 어울렸던 사람들이 오늘날 전주 지역 문화의 조직과 형식, 틀을 갖추게 한 주역이다. (사)이음을 말함에 있어 전주한옥마을을 빼놓기는 어렵다. 한옥마을이 형태를 갖추기 전, 시설이나 설비에 앞서 문화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절실하다는 점을 간파한 김 대표는 “전주한옥마을의 부침(浮沈)이 심했던 2001년 무렵, 정치적 의견이나 구호보다 한옥마을 마당과 텃밭, 나무와 부엌에 대한 생각을 시민들 속에서 직접 듣고 다니며 반영했다.”고 들려준다. 김병수 대표가 현장 청취한 한옥마을의 삶은 2004년, ‘한옥마을 이야기 지도’와 ‘한옥마을 자서전’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문화적 가능성을 적시하는 사회적 기업
문화 속에서 비전을 발굴하고 전략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성장해 가며, 사회 구성원의 존중과 협력을 도모하는 (사)이음은 2008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노동부 선정 사회적 기업 및 일자리 창출 우수사업장으로 본격적인 행보를 진행하게 된 (사)이음은 이듬해 오늘날의 기업명칭인 ‘이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어서, 2010년 전라북도 후원 지역문화예술단체 집중육성사업을 비롯, 사회적 기업을 육성한 공로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전주시 문화를 지키는 거목으로 성장했다. 김병수 대표는 “한옥마을 북쪽 경계쪽, 그러니까 동문사거리라고 비어있는 공간이 있다. 이 곳에서 퍼블릭(public)한 문제를 심심하게 연구해보자는 취지로 공공작업소 ‘심심’ 을 만들었다.”며 “한옥마을의 경계지역부터 강하게 잡아 놓아야 상업적 개발압력으로부터 한옥마을이 보존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전주의 문화동맥을 지켜내려는 (사)이음의 움직임은 오래도록 지속됐다. 남부시장과 한옥마을의 연계성 강화, 농촌과 연계하는 옴니버스 캠프, 전통장르를 마당에서 공연하는 콜레보레이션 무대, 향교 유림 어르신들과 함께 진행한 향교 사업단 등이 그것이다. 마치 모세혈관처럼 전주에게 그리고 전주 시민에게 서서히 흡수된 문화의 움직임은 오늘날 전주를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문제의식 공유로 문화의 인식 전환
2013년 (사)이음은 전주를 구심점으로 거대한 문화의 동심원을 그려가고 있는 중이다. 남부시장의 협동조합형 창업방식을 적용해 정읍시 중소기업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농촌·전통 가옥 기반의 관광거점 전환 네트워크사업을 안동, 경주, 서울, 광주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 25일에는 서울 마포구 공덕역에 천평 가까이 되는 부지를 확보해 ‘늘장’이라는 사회경제장터를 개설했다. 전주가 지닌 인적, 문화적 콘텐츠를 사회적 핵심코드로 전환해가는 (사)이음의 진행방향은 독자적이자 독보적이다. “전주에서 시작된 공연이나 문화적 장르를 아시아(Aisa)적인 성격으로 확장해 아시아 로드를 만들고 싶다.”는 김병수 대표. 우리 사회의 문화가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개성있는 작업을 공유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그 생각 속에 2013년, 전주문화의 뿌리는 더욱 강건해져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