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학문을 하든지 우리에게는 온고지신의 정신이 필요하다.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마음가짐 말이다. 우향 김동애 작가는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긴 시간을 문인화에 전념해왔다. 그녀는 다양한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문인화의 정체성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생각을 굳건히 지켜나가고 있다. 깨끗하고 담백한 그녀의 성품이 작품에 묻어나는 듯, 진심이 담긴 한 획 한 획의 필선은 우리의 정서가 담겨있고 갈등하는 현대인의 고뇌가 엿보인다.
서예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동양미술을 가깝게 접할 수 있었던 김동애 작가는 미술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인물 위주의 동양화를 주로 그렸다. 이후 이화여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군자를 비롯해 문인화를 주로 작업해 온지도 27여 년이 되었다. 그 성과의 하나로 작년 10월 그녀는 월전문화재단에서 초대 작가로 선정되어 한벽원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문인화 부문에서 초대를 받은 중견 작가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의 그림은 서정적이었지만 생동감이 있었고, 참신했고 창의적이었다.
“저는 다섯 마리의 고양이를 기를 만큼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저는 고양이라는 소재를 그림에 넣음으로 제 마음을 표현합니다. 작품의 소재는 제 가까이 있는 것들이에요. 화실 안에 있는 소품이나 풍경이 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거든요.” 김동애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테마나 소재는 이러한 이유에서 선택되었다. “멀리서 찾고 싶지 않았어요, 늘 내 곁에 있고, 함께 하는 소재를 선택할 때 가장 진솔 되게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녀.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진실성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에는 난초, 화실 풍경, 고양이, 사군자 등이 주로 등장한다. 그녀의 주위나 일상생활 속에 있는 소재가 그녀의 화폭 속에 들어와 재해석 되고 그녀의 작품이 된다. 완성된 작품은 담백하지만 감정은 풍부하고 단아한 필선은 힘이 있고 정감이 넘친다. 작가는 그녀의 성품과도 닮은 난을 특히 좋아한다. 김동애 작가라고 하면 화단에서는 난초를 먼저 떠올리는 작가로 알려졌다. 지난 1999년도에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부문에서 석란(石蘭)이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 했다.
문인화는 진심을 담아야 한다
김동애 작가는 문인화의 방향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현대문인화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저는 이해가 잘 안됩니다.” 최근 현대문인화로 소개되는 작품을 살펴보면 아크릴과 같은 다른 재료와 독특한 기법을 사용한다. 반드시 먹과 화선지에 국한될 필요는 없지만, 재료나 기법만의 변화가 현대적 변화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문인화는 화선지 위에 먹이나 채색을 통해서 문인의 정취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에는 문인이라는 일컫는 선비가 없고 전문가들이 문인화를 그립니다.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그림을 그리지만 선비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난초 하나를 그리더라도 난초에서 선비와 문인들의 고결함, 격조를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죠. 현대 문인화는 문인화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특성인 문인의 정취, 격조, 품격의 기본적인 정서를 계속 끌고 나가면서 표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림에 문인의 정취와 선비다운 진솔한 마음이 들어간다면 그 진정성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달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동애 작가는 아직도 전통 기법과 고전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작품은 먹과 화선지 약간의 채색이 전부이지만 절대 고루하거나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세련되고 감정이 풍부한 느낌이 더 강하다. 그 이유의 밑바탕에는 김동애 작가의 작품에 대한 사랑과 진실한 마음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선 하나를 그리더라도, 점 하나를 찍더라도 격조를 바탕으로 진실 되게 그린다면 문인화는 현대인의 눈에도 세련되고 전혀 촌스럽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난초가 촌스럽고 고루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작가가 진심을 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 것을 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본질이 있다. 김동애 작가는 그런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의 정서가 짙게 베인 학문을 완전히 없애면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의 가치를 점점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라며 대학에서 동양화과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점을 안타까워 했다. 그녀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필수과목이었던 사군자, 서예, 문인화 수업은 거의 없어지고 실용학문만 강조하는 시대. 생계를 위해 상업적인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동양미술은 마음을 치유하지요.”라고 했다.
그녀는 오늘도 먹선 하나로 마음을 전달 하고자 선을 긋는다. 화선지 위에 붓을 드는 그녀의 작업은 그 자체로 깨달음을 주고, 깨달음을 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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