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들의 실험정신에 초점을 맞춰 ‘젊은 정신’을 모색하는 제17회 <젊은 모색 2013>展이 6월 2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미) 과천관 제1전시실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회화, 한국화, 사진, 설치, 애니메이션 등 각 분야에서 남다른 이력을 쌓고 있는 작가 9명을 선정해 작품을 소개한다. 특히 <젊은 모색>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1980년대 제도적 관성을 깨고 젊은 의식을 대변하는 작가들을 선정해 주요 작품으로 기획한 격년제 정례전이다.
지난 2010년 <젊은 모색 30년>전을 회고전으로 개최하면서 그동안 진행되어온 <젊은 모색>전은 올해부터는 매년 1회 개최하는 것으로 전시 횟수를 늘린다. 또한 작가의 연령보다는 작품 제작의 ‘태도’와 ‘내용’에 초점을 두고 작가 선정에 있어 유연하게 범위를 넓혀 새로운 조형 담론과 다양한 작가군을 조명했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가 소통의 수단이 되고 있는 현재 단지 새롭거나 이데올로기를 담은 것 자체가 미술의 기준은 아니다. 따라서 기존의 매체를 추구하는 방식에서 진일보해 경험과 관계 지향적인 경향을 반영한 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현재의 젊은 작가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 경험하며 그 과정 속에서 작업을 완성해 나가는 작품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때 작가는 그 관계를 직접적으로 만들고 조정하며 다층적인 의미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권위적인 진실,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예기치 못한 우연이 발생하며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의미가 생성된다.
이번 <젊은 모색 2013>에서는 경험, 관계, 과정과 연관된 작업들이 전시된다. 신체를 통해 세상과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박제성, 도시적 만남을 보여주는 유현경·김태동, 작품제작 과정에 참여자나 관객을 상정하는 구민자·박재영, 실험 과정을 통해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는 백정기, 세계와 결합한 관계를 인식하는 김민애·심래정·하대준의 작업을 전시한다. 이 작품들은 현실을 예리하게 주시하며 예술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여 나온 결과물이다.
#1. 구민자 작가의 ‘퍼포먼스’
사회적인 틀과 행동 패턴 등 고정관념을 다시 사고하게 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작가는 특정 그룹의 사람들을 참여자로 만들면서 사진, 영상, 설치의 방식으로 퍼포먼스를 기록해 나간다. <대서양 태평양 상사>는 뉴욕 시의 ‘대서양’ 거리와 ‘태평양’ 거리를 따라 형성된 가게들에서 이국적인 물건들을 사 모아 판매하는 상사의 이름이다. 이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의 물건을 모아 판매하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직업의 세계>에서는 언어도 익숙하지 않은 타이베이에서 직업을 구하는 과정을, <스퀘어 테이블: 예술가 공무원 임용 규정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는 노동의 가치를 환산하기 어려운 예술가를 공무원으로 만드는 가정 하에 진행되는 퍼포먼스이다.
#2. 김민애 작가의 ‘엉뚱한 부속물’
건축물의 간과된 공간에 쓸데없는 구조물을 만듦으로써 그 공간을 환기하고 작품의 의미를 묻는 작업이다. 이것은 세상의 시스템을 경험하고 그에 타협하는 세계와 연관된 자기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미술관 건축의 부속물인 계단 난간의 형태를 본 뜬 물건을 전시장 안팎에 놓음으로써 기능에 맞지 않은 물건을 뜻밖의 공간에 제시하는 엉뚱한 맥락을 보여준다. 이 물건은 때로 동선을 제안하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하는데 관객이 이를 기능적인 물건으로 인식하는지 오브제로 인식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흥미롭다.
#3. 김태동 작가의 ‘새벽의 도시’
새벽에 도시의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을 찍고 있다. 새벽의 도시는 스산하며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공간만큼이나 텅 빈 표정을 짓고 있다. 작가는 촬영 장소를 정하고 자정에서 새벽 사이에 거리를 서성이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을 섭외하여 촬영으로 이끈다.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과정은 도시를 탐험하는 과정이자 또 다른 도시적 만남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복잡하고 익명화 된 도시 그리고 새벽 시간대에 마주친 사람들은 마치 도시의 이면을 드러내 듯 개별화되고 소외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4. 박재영 작가의 ‘권위 있는 과학의 허상’
마인드 컨트롤러 제품을 시연하는 공간설치 작업이다. 이 작업은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현대사회에서 과학의 권위가 얼마나 인간의 심리를 압도해 왔는지 보여준다.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프로젝트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장치’와 그것을 만들어낸 ‘오래된 회사’에 대한 것이 신제품을 체험할 수 있다. 따라서 제품들을 구경하는 박물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작사인 다운라이트(DownLeit)사는 새빨간 거짓말(a downright lie)을 축약한 단어다. 이 작업은 인간의 불안정한 심리에 대한 사회적 기제에 접근하는 작업이다.
#5. 박제성 작가의 ‘물질만능시대의 공허함’
사회적으로 절대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몸과 행위의 반복을 통해 그 의미를 해체한다. <의식-좌표>는 유토피아를 의미하는 수직, 수평의 몬드리안 작품을 관람자 위치에서 비껴 촬영함으로써 왜곡되게 시각화한다. 이것은 작가의 위치를 통한 몬드리안 작품과의 관계 맺음이며 모더니즘 가치에 대한 의문 제기이기도 하다. <의식-환원과 분리>는 화폐의 인쇄 이미지를 지우는 반복과정, 그리고 그것을 오브제화 하여 미술관 벽면에 부착하고 철거함으로써 물질 만능시대에 돈의 가치를 공허하게 한다. <의식-인위>은 120년 된 멈춘 시계바늘을 각각 다른 사람이 한 시간을 인지하고 돌리게 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마다 상대화된 시간 개념을 시각화하고 있다.
#6. 백정기 작가의 ‘재료 본질의 연관성’
시각적인 이미지와 재료의 본질이 맺은 연관성을 과학적 방식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Is of: 서울>은 작가가 만든 리트머스 종이에 한강의 오염된 물로 프린트를 하여 강과 도시의 생태적인 관계를 성분과 이미지의 관계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Fortune Plating>은 전기의 +- 성질을 이용하여 상징성을 갖는 물건이 일상의 사물을 도금함으로써 상징성이라는 의미가 이동하는 과정을 시각화하고 있다. 또한 <Historical Antenna>는 한국조각사의 상징적 조형물인 김만술의 <역사(力士)I, II>(1959)에 라디오 주파수를 받아들임으로써 구조물 자체의 존재성을 보여주고 있다.
#7. 심래정 작가의 ‘흑백 드로잉과 애니메이션 세계’
개성적인 필치로 제작된 흑백 드로잉과 애니메이션이다. 작가는 인체 이미지에 집착한다. 인체 이미지는 가장 기본적인 활동인 먹고 마시고 분비하고 배설하는 행위를 하며 주변 사물들과 관계를 맺어간다. 작가는 이런 인체 이미지를 변형하고 학대하며 스스로 치유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인체를 물리적으로 변형시키고 그렇게 변형된 인체를 바라보는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 전시에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과의 관계와 남녀가 사랑을 하면서 변하는 신체구조에 대한 작품이 소개된다.
#8. 유현경 작가의 ‘낯선 사람과 떠나는 여행’
캔버스에 유채로 인물을 표현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단순히 외관을 그리지 않고 대상과 맺은 관계에서 느낀 추상적인 지점을 회화로 표현한다. 얼굴이나 신체 묘사가 생략되고 화면은 거친 붓놀림과 미묘한 색 변화로 나타난다. 작가는 계약관계를 통해 동기를 부여받는다. 낯선 사람과 여행을 떠나 그 인상을 기록한 남성 모델 연작처럼 이번 시리즈는 1년 이상 모델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작업실에 여러 점의 캔버스를 둘러놓고 덧칠을 지속해 나간다. 이러한 작품은 작가의 경험을 통해 상대를 인식하고 판단하며 표현하는 작가 내면의 또 다른 투영이라 할 수 있다.
#9. 하대준 작가의 ‘ ’
우연히 지하방 창문을 통해 마주친 닭에 대한 경험을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는 마치 정물을 대하듯 닭을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닭의 존재감을 강화한다. 이것은 보면서 보이던 사유를 통해 지각되는 강렬한 경험이다. 작가는 자아를 두려움의 상징적인 두 요소로 표현한다. 두려운 존재인 닭과 두려움과 불안함의 존재인 인체를, 세필과 담묵으로 표현 방법을 달리하여 나타내고 있다.
<첨부 작품 크레딧>
#1. 구민자
<대서양 태평양 상사> 2011 가변크기 혼합매체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2. 김민애
<상대적상관관계> 2013 철, 나무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3. 김태동
<Day Break-003> 2011 150 x 190cm 피그먼트 프린트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4. 박재영
<다운라이트 디지털 최면 의자> 2013 120 x 100 x 180cm x (2)
어린이용 썰매, 식기건조대, 컴퓨터 의자, 야채 믹싱볼, 모터, 차량용 LED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5. 박제성
<의식 027, 029 - 좌표> 2013 372 x 2261cm 벽면에 지클리 프린트 된 목화섬유지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6. 백정기
<Is of: 서울> 작업과정 아카이브 영상, 2분 36초 Ⓒ국립현대미술관
<Fortune Plating: 삼족섬> 2013 가변크기 삼족섬(황동 두꺼비), 유리수조, 말발굽 쇠, 혼합매체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7. 심래정
<층층> 2013 3분 14초 셀 애니메이션, 2채널 비디오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8. 유현경
<함석영 구지윤> 2013 227 x 181cm 캔버스에 유채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9. 하대준
<비밀과 두려움1> 2007(2012 가필) 130 x 160cm 순지에 수묵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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