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작가들이 유목적 삶을 살아가며 다양한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서울>展은 한국으로 이주하여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인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는 전시로 이들이 인식하고 표현한 한국과 그들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각에 대해 질문한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일본, 독일,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 캐나다, 체코, 인도, 싱가포르, 호주 등 10개국 13명의 작가들은 직업, 결혼, 유학, 호기심 등 여러 이유로 한국에 첫 발을 딛게 된 후, 짧게는 1년, 길게는 20년 동안 한국에 거주하면서 활동해온 작가들이다. 여기에는 한국에서 활동 중 2009년 급작스런 사망으로 애도의 물결을 일으켰던 작가 에밀 고(Emil Goh)도 포함되어 있다.
외국인 작가들의 작업실
한국에 장기 또는 영구 체류하고 있는 작가들의 경우 한국미술의 지평을 넓히는 중요한 작가군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제대로 된 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다양한 전시기획을 통해 그동안 조명 받지 못했던 작가와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소개하고자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 3월부터 열린 <SeMA 골드 : 노바디>가 해외로 이민을 갔거나 장기 거주하는 한국 디아스포라 작가들에 주목한 반면 이번 <유니버설 스튜디오, 서울>은 해외에서 한국으로 그 활동 영역을 옮긴 외국인 작가들의 삶과 작업을 중심으로 한다. 전시 제목은 헐리우드의 영화 테마 파크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 작가들의 ‘작업실(studios)’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유목적 생활을 영위하는 현대인의 ‘보편적(universal)’이고 전 지구적인 현상을 재현하는 장소임을 암시한다. 이를 통해, 타문화를 대할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문화적 판타지 – 이를테면 외국인 작가가 갖는 한국에 대한 낭만적 편견 혹은 비판적 시각 또는 한국인이 외국 작가에게 품게 되는 기대 – 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공유하고자 한다.
한국의 상황을 다룬 작품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바라보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예술가들의 본질적인 태도가 다른 문화권으로의 이주를 계기로 흥미로운 결과물로 발전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전시에는 작가들이 이주 전의 작업적 특징을 유지하며 보다 보편적인 주제 안에서 한국의 상황을 다룬 작품들도 있으며, 한국 역사와 문화, 분단과 정치, 그리고 도시 풍경과 일상 등을 적극적으로 소재화한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잉고 바움가르텐, 클레가, 사이몬 몰리, 알프레드 23 하르, 등의 작가들은 한국에 오기 이전의 작업과 이후의 작업을 함께 전시하여 관람객들이 주거지의 이동에 따라 작품에 나타나는 미학적 태도, 주제와 소재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 도록에는 작고 작가 에밀 고를 제외한 열 두 작가들에게 다섯 개의 키워드(Home, Language, Cultural Fantasy, Passport, Seoul)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작가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텍스트, 시, 드로잉, 사진 등에 담아 작가 개개인의 내밀한 생각을 작품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와 더불어, 퍼포먼스와 라운드 테이블, 작가와의 대화 등 작가들이 한국과 한국 문화에 반응하는 양상이 어떻게 서로 다른 관점과 표현으로 나타나는 지 살펴볼 수 있는 시간도 마련했다.
자본과 권력에 대한 불안
인도 출신 작가 탈루 엘엔은 인도에서 시각예술과 박물관학을 수학하고 영국 리즈 대학교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후 현재 8년째 한국에 거주하며 뉴델리와 런던, 뉴욕, 그리고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인 작가이다. 그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고민하는 자본과 권력, 그리고 그에 대한 불안 등을 주제로 하는 조각 작업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거대 나무 조각인 <크로마토포비아(Chromatophobia)>는 인간의 돈에 대한 신경증을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하는 작품이다. 작품 제목인 ‘크로마토포비아’는 돈에 대해 비정상적인 공포를 느끼는 증상을 뜻하는 단어이다. 관객들은 소원을 빌며 자신의 동전을 못으로 나무에 박아 넣도록 유도된다. 소원을 비는 제의적 행위가 결국 자신의 돈이 지닌 실질적인 재화의 가치를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아이러니컬한 현상을 관람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경험하고 하는 작품이다.
건축물의 일상과 풍경
독일 출신의 잉고 바움가르텐은 독일 칼스루헤 국립예술조형대를 졸업한 후 파리, 영국, 일본 등에서 수학하고 현재 홍익대학교 회화과 교수로 재직 중인 회화 작가이다. 건축물이 그 지역의 특성과 역사를 담고 있는 중요한 문화적 산물이라 생각하는 바움가르텐은 다양한 국가에서의 삶을 경험해 온 만큼 날카롭고 미학적인 시선으로 각 지역의 건축물과 일상의 풍경을 표현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2005년 독일 프리드리히샤펜 지역에서 그렸던 전형적인 독일식 주택 작업과 함께 2011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에서 작업한 회화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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