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려 있는 궤짝안의 사과 그림은 바로 바닥으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질거 같은 형상으로 마치 실물을 보고 있는 착각을 할 정도로 빛깔이 곱고 탐스럽다. 꺼내 한입 베어 먹고 싶을 만큼 뒤돌아보게 되고 눈길을 떼기 어렵다. 윤병락 작가의 그림은 마치 벽이 사과 배경화면처럼 표현되는 공간 확장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실제 인것 처럼 느껴지는 시각과 구도의 재해석등을 통해 신선한 ‘사과’의 생명력과 풋풋함을 표현하여 그림 콜렉터의 표적이 되고 있다.
윤병락 작가는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윤 작가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시작한 그림그리기에 평생을 바쳐왔다.
대학진학을 위해서 특별난 교습을 받은 적도 없으며 오로지 그림 그리기가 좋아 한가지에만 몰두한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하며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미술계의 대가 김흥수 화백은 윤 작가의 작품을 색감과 화면구성 그리고 앞으로의 장래성 등을 고려해 직접 전화 통화를 하면서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윤 작가는 “대학시절부터 화면 분할에 관심이 많았다. 첫 개인전에서도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느껴지는 기상을 표현하기 위해 현재와 과거를 한 화면에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한 “저는 프레임 안에 그림을 한정짓는 틀을 깨고 싶다. 공간의 확장을 모티브로 작품을 구상하고, 그림이 걸린 공간이 그림의 배경이 되도록 의도한다. 작품과 그 주변 공간이 서로 호흡하는 관계에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공간속으로의 무한한 확장은 가능해 진다 ”고 말했다.
사과는 내 작품의 원천
화폭에 사과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다. 그 전에도 밤, 감 등 과일을 소재로 한 정물을 했지만 운명처럼 사과를 그리게 됐다. 그는 유년기를 사과의 고장인 경북 영천에서 보내며 벌겋게 농익은 사과밭을 천지삼아 순수하게 뛰놀던 시절이 있었다. 철이 되면 친구들과 사과서리를 하며 놀던 추억이 이제는 사과를 알리는 작가로 작품의 원천이 되었다. 윤 작가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 슬하에서 과수원 아들로 농부의 힘겨운 삶을 지켜봐왔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수건이 등장한다. 사과 궤짝에 걸쳐 있는 하얀 수건에 일을 마친 농부의 모습이 서리며 노동의 신성함을 전해준다. 보고 있으면 그저 사과만 담긴 그림이 아니다. 작품은 전체를 착각하게 한다. 궤짝이나 천 모양을 화폭에 그대로 담아내 마치 설치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무와 천의 질감이 하도 생생해 사과 상자를 걸어놓은 듯하다.
변형 캔버스를 통한 공간 인식의 확장
윤병락 작가는 사과를 어떻게 배치할지 구상한 뒤 그 윤곽선을 따라 합판을 자르고 여기에 두꺼운 한지를 붙인 다음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변형 캔버스’ 기법으로 그린 사과는 윤 작가 고유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는 캔버스 대신 한지를 택했다. 사과의 양감과 부드러운 질감을 제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고민 끝에 나온 전략이었다. 나무판 위에 삼합의 두꺼운 한지를 붙이고 그 위에 유화 물감으로 두세 차례 덧칠을 한다. 작업실에서 사과를 깎기도 하고 궤짝을 옆으로 쏟기도 하면서 다양한 구도를 만들어 낸다. 나무 궤짝은 고향에서 아버지가 보내주고 계신다고 했다.
“제 작품의 특징은 소재의 외곽 형태가 그림의 외곽 형태가 되는 변형 캔버스의 사용입니다. 그동안 작품은 면 분할을 통한 초현실의 세계, 상징성을 띤 전통적인 소품으로 한국의 정서를 표현했다면 현재는 변형 캔버스를 통한 공간 인식까지 표현하게 되었다.”
지금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 할 뿐
“내 작품을 찾는 사람이 갑자기 많아졌다. 기적 같은 일이지만 꿈을 향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더 큰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윤 작가의 모습에서 순수한 심성을 읽을 수 있었다. 앞으로 작품 테마가 변할 수 도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작업의 변화라는 것이 미리 계획을 세운다고 그대로 되는 게 아니다. 세상살이처럼, 우연한 계기로 바뀔 때가 되면 바뀐다고 생각한다. 지금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 할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윤 작가는 스타 작가다. 옥션에 고가로 작품이 낙찰되고 해외에서도 인지도를 쌓고 있다.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의 눈과 머리와 가슴을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윤 작가. 일찍이 해외 아트페어, 뉴욕 소더비, 홍콩 크리스티 등에 출품을 한 적이 있는 윤 작가는 올해 더욱 해외 활동에 주력할 예정이며, 현재 국내 뿐 아니라 외국 갤러리에서 들어온 그림 요청으로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머지않아 윤 작가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주목 받아 한국의 대표작가로 우뚝 서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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