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 무르익는 황금들판 사이로 신명난 농악 한자락 흐드러지게 펼쳐진다. 정통농악의 맥을 계승하며 지역문화 보존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 비산농악·날뫼북춤 보존회. 연간 80회 이상의 공연활동을 펼치며 비산농악과 날뫼북춤을 전국적으로 전수시키고 있는 이 모임은 뜻깊은 단체다. 자칫 민간 예술로만 남겨질 수 있었던 날뫼북춤을 1984년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 전승하면서 대구지역의 대표적인 민속예술로 정착시켰기 때문이다. 풍년의 곡식을 거둬들이는 이 계절, 날뫼북춤 제2대 예능보유자로서 비산농악·날뫼북춤 보존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윤종곤 대표를 만났다.
날 비(飛), 뫼 산(山)을 써서 ‘날뫼 마을’이라고도 불리는 대구 비산동. 이 곳에서 자생한 비산농악은 예로부터 날뫼마을 주민들이 농삿일을 할 때 한시름 덜어주기 위해 풍물을 펼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득한 옛날 냇가에서 빨래하던 어느 여인이 서쪽 하늘에서 날아오는 산을 보고 놀라 “동산이 날아온다” 하였더니 산이 땅에 떨어져 비산동이 되었다 한다. 날뫼마을의 신령스러운 기원설화를 반증하듯 비산농악은 당산제의 지신풀이 뿐 아니라 이 곳의 원고개를 넘던 원님 행차에도 쓰일 정도로 유서깊은 농악이다. 윤종곤 대표는 말한다. “500여년이 넘는 깊은 뿌리의 농악입니다. 농사굿과 군사굿이 섞여있으면서도 흥겨운 가락이 특징이지요.” 어린 시절 풍물소리에 무작정 끌려 1987년부터 비산농악에 몸담고 있는 윤종곤 대표의 애정이 각별하다. “비산농악은 오케스트라와 뮤지컬, 그 어떤 대작과 협연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다양한 장르와 장소에서 어느 누구에게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우리 음악이지요!” 현재 비산농악·날뫼북춤 연구회는 전국 4개 지부를 두면서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 및 해외 각국까지 지부를 늘려갈 예정이다. 1953년(6.25후 재창단) 상쇠 최봉수 씨로부터, 2013년 현재 나문구 씨가 상쇠로 활동 중인 비산농악은 쇠, 징, 북, 장구, 소구, 잡색, 땡각, 기수를 포함해 모두 49명이 활약하고 있다. 길굿과 인사굿을 시작으로 싸움굿, 살풀이, 덕석말이, 뒷마당풀이 등으로 이어지는 비산농악은 전통 북가락과 북놀이로 신명의 극치를 이룬다.
북춤 가락으로 한국인의 희로애락 녹여 내 비산농악이 타고난 흥으로 좌중을 사로잡는다면 날뫼북춤은 비산농악이 낳은 자식이다. 날뫼북춤 제2대 예능보유자인 윤종곤 대표는 “비산농악에서 발달된 북춤이 날뫼북춤입니다. 대부분의 마당이 북만으로 춤을 추게 되는데 그만큼 비산농악이 북춤이 발달된 형태라는 점을 알 수 있지요”라고 전한다. 날뫼북춤은 다른 지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다양한 춤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질굿으로 시작해 정적궁이,다드래기, 물레돌기, 허허굿, 살풀이굿, 덧배기 굿 등의 열두마당으로 이어지는 날뫼북춤은 경상도 특유의 덧배기 가락에 의한 춤사위와 남성적 기개가 넘쳐흐른다. 날뫼북춤의 1대 계승자인 고 김수배 선생님에게 사사받은 윤종곤 대표는 “날뫼북춤은 제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라며 “비산농악과 날뫼북춤은 곧 제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라는 소신을 밝혔다. 윤종곤 대표는 앞으로 비산농악과 날뫼북춤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승격시켜 세계유네스코에 등재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문화, 특히 전통문화는 한 나라의 경제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콘텐츠다. 우리 농악을 문화로 발전시키고 매년 해외공연을 하고 있으며 나아가 전통문화 재산으로 보존해가는 윤종곤 대표, 그리고 비산농악날뫼북춤회야말로 전통 문화의 실질적인 계승자다. 그 소중한 사명을 알기에 오늘도 윤종곤 대표는 흰 고깔에 고운 색동 띠 두르고 세상을 향해 신나는 후렴구를 외친다. ‘벅구야~벅구야~’ 비산농악 울러퍼지는 가을하늘이 유난히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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