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성이라는 감수성과 네트워크 이론을 시각화하는 지적 즐거움의 신미술 프로젝트인 알레프 프로젝트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특별전의 일환으로 지난 11월 13일부터 2014년 3월 16일까지의 일정으로 열리고 있다. 21세기 신개념 이론인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을 적극 수용하여 미술, 건축, 디자인, 과학, 공연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만들어낸 알레프 프로젝트는 관객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융복합 프로젝트이다. ‘알레프(aleph)'는 히브리 문자와 아랍 문자의 첫 번째 글자인 동시에 20세기 환상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속에서 무한한 우주공간을 담은 작은 구슬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알레프 프로젝트는 무한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관점들이 동시에 시각화되는 곳을 상상하며 새로운 예술적 플렛폼의 등장을 알리고자 기획되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무는 소통 방향을 제시하며, 다양성이 존중되고 융·복합적인 문화의 가치를 추구하는 오늘날 시대적 정신을 드러내고자 이 전시회를 기획하였다. 현대사회는 복잡해졌지만 그 결과 단순함을 강조하게 되었다. 단순하게 살 것을 권장하는 가하면, 투명하고 간결한 디자인을 세련된 것으로 선호하며, 복잡한 현실에 질서를 정립하고,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명료한 법칙을 밝히려고 애쓴다. 단순함 혹은 질서에 대한 이러한 동경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삶에서 늘 직면하게 되는 혼잡함, 즉 ‘복잡성’에 대해 다시 생각나게 만든다. 모든 현대인의 선호와 일상에 체하된 근대적 인식론에도 불구하고 삶의 많은 난제들은 해결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복잡성은 창발을 모색해 단순함을 역전시키고, 우리 주변의 삶과 물질을 이해할 수 있는 가치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새로운 융합을 초래하는 일은 새로운 연관성을 창발한다. 융합은 각 개체들 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이 필요하며 그 개체들은 독립적인 동시에 연결되고 동시다발적이어야 한다. <알레프 프로젝트>는 단일한 전시공간이 아니라, 건물 내외부의 여러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나아가 <연결-전개>나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 등의 개관 전시와 연결 또는 접속 될 여지를 열어두어 서울관 개관 전시의 큰 의의를 향하고 있다. 참여 작품과 공연프로그램 역시 서로를 참조하며 전체를 구성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부분이 해체, 재구성되는 아승아슬한 항해의 여정을 통해 최종 목적지인 미술관에 이르게 된다. 이번 전시는 환경에서의 아주 조그만 변화가 미래에 커다란 변이를 이끌 수 있음을 은유화하며, 생태학적 유기체들의 공생에서부터 천체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진화의 방향을 고심하는 현대 미술과 오늘날의 미술관이 새로운 빅뱅을 만나 커다란 발전과 전환을 이룰 수 있다면 이 또한 복잡화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필립 비슬리(Philip Beesley)의 ‘착생식물원(Epiphyte Chamber)’은 제7 전시실에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착생식물원은 몸에서 느끼는 감각들 일부를 연출한 신체적 모형이다. 예를 들어 공연을 보면서 반응하는 신체의 느낌, 즉 발뒤꿈치에서 종아리를 타고 올라오는 근육의 긴장감, 손을 올리고 팔을 흔들 때 느껴지는 섬세한 감각들을 디지털 요소로 표현한 작품이다. 또 멀티프로젝트홀에서는 ‘진화형 스파크 네트워크(Evolving Spark Network)를 제작한 에드윈 판 데르 헤이더(Edwin van der Heide)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그는 사운드, 공간, 상호작용의 영역을 탐구하는 연구자이자 예술가이다. 작곡과 음악적 언어를 공간적, 상호작용적, 융합적인 방향으로 확장시켜왔다. 그의 작품은 설치, 퍼포먼스, 환경으로 구성되며, 관객은 그의 작품 속에서 작품을 탐험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다. 벨기에 겐트 시립현대미술관, 린츠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 로테르담 V2 디지털아트페스티벌, 일본 도쿄의 ICC, 중국 베이징 국립미술관, 베를린의 트렌스미디알레, 바르셀로나의 소나 등 유수의 미술관과 페스티벌에서 작품을 발표해왔다. 진화형 스파크 네트워크는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80개의 스파크 브리지를 사용한다. 서로 다른 스파크 브리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통해 복잡성이 구현된다. 네트워크의 구조는 '전체는 개개의 총합보다 더 크지만 개별적 요소 없이는 결코 전체가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설치작품이 출발점이 된다. 이밖에도 정교한 실험실의 ‘척도 없는 네트워크’ 등을 통해 현대인이 구현하고자 하는 융합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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