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제목인 <바람보다 먼저>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존재였던 시인 김수영의 「풀」(1968)에서 차용하였다. 유연하고 강인한 ‘풀’은 ‘바람’같은 고난에도 뿌리 뽑히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바로 이 제목은 고난과 시련을 능동적으로 타개해왔던 들풀과도 같은 우리 민중의 주체성을 집약하는 표현이다.
이번 전시는 41인(팀)의 작가가 선보이는 총 189점의 작품과 200여 점의 아카이브 자료로 구성돼 있다. 이를 통해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시기에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예술가들의 숨결을 느껴볼 것을 제안한다.
<바람보다 먼저>는 1부 ‘포인트 수원’과 2부 ‘역사가 된 사람들’ 총 2부로 나뉜다. 1부에는 권용택, 박찬응, 손문상, 신경숙, 이억배, 이오연, 이윤엽, 이주영, 임종길, 최춘일, 황호경 총 11명의 작가가 참여해 1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또한, 1979년부터 1990년대 초반에 걸쳐 활동하며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수원 미술의 실천적 동기를 마련했던 POINT(포인트), 時點·視點(시점·시점), 목판 모임 ‘판’, 수원문화운동연합, 미술 동인 ‘새벽’, 노동 미술연구소 6개의 소집단 아카이브 약 150여 점이 소개되어 수원지역 소집단 활동의 맥락과 의의를 연대순으로 확인할 수 있다.
2부 ‘역사가 된 사람들’은 중앙화단 중심으로 쓰여 왔던 미술 담론을 지역 미술 의제로 확장시켜 경기, 인천, 대구, 광주, 부산 등지의 지역작가와 더불어 MMCA 소장품으로 구성된다. 전시 참여 작가와 그룹은 총 30명으로 강요배, 곽영화, 광주시각매체연구회, 김봉준, 김정헌, 김종례, 그림패 둥지, 노원희, 민정기, 박경효‧배용관‧서성훈, 박경훈, 부산청년미술인협회, 성효숙, 신학철, 안성금, 윤석남, 이기연, 이상호, 이응노, 이종구, 임옥상, 전정호, 정비파, 정정엽, 정하수, 천광호, 최민화, 한국TC전자 여성노동자, 홍성담, 홍성민이다. 특히 지역 중심으로 발생했던 움직임을 조명하여 1980년대 사회 참여, 실천 미술 담론에 대한 균형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또한, 이번 전시는 1980년대 집단적 사회 참여 예술 활동 이후, 꾸준히 개인적 작업을 예술로 승화시켜 작업해 온 작가들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갔던 사람들이었으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제 역사의 흔적이 된 치열했던 시간의 궤적을 탐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은 “<바람보다 먼저>는 수원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현대미술의 사회 참여적 미술이 지닌 다원성을 복원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는 민중의 목소리와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