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대학생들이 방학이면 배낭을 둘러메고 해외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클림트의 화려한 초상화 앞에서, 렘블란트의 우아한 초상화 앞에서 저절로 걸음을 멈춘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누군가의 눈빛과 표정, 주름, 머리카락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그러다보면 알 수 없는 감동이 심장을 휘젓는 야릇한 체험을 하고야만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에서의 초상화 화가라고 하면 길거리에서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초상화 세계는 르네상스 이후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에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한국 화단에 있어서의 초상화 장르, 그런 초상화만을 한국에서 오롯이 40년을 그려온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오동희 작가를 만나봤다.
국내를 대표하는 초상화 화가라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40년을 한결 같이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오동희 작가이다. 오 작가는 극사실주의에 충실한 기본기와 자신만의 주관적 개성을 접목한 작품세계로 인정받아 왔다. 초창가의 선보였던 세필을 사용한 섬세한 작업은 기본기를 다지기에 충분한 과정이었고, 이후 선보인 좀 더 두꺼운 캔버스에 유화를 이용한 인물화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줬다. 오 작가는 더 완성도 있는 인물화를 위해 신체의 골격과 근육에 대한 공부도 마다하지 않았고, 누드 크로키와 누드화를 그리면서 사람의 선(線)을 익혔다. “그림을 봤을 때 특징을 잡아내는 게 초상화를 잘 그릴 수 있는 포인트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림에 소질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제 경우에는 어릴 적 석고 데생을 많이 했던 것이 많은 자산이 된 거 같습니다.”
오늘 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상화 화가로 불리는 오 작가는 늦은 나이에 회화를 전공했다. 이후 주말이면 빼놓지 않고 작품을 보러 미술관을 다녔던 오 작가는 그 수많은 명화 중에 유독 인물화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게 그때 느꼈던 감동을 잊지 못한 그녀는 지금까지 오직 한 길, 초상화만을 그리고 있다.
만족을 모르는 집념으로 현재진행형의 작가
오동희 작가는 긴 세월이 흐르고 연륜이 쌓이는 동안 대부분 만족하는 작품을 그려 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작품에 임하려고 노력한다. “어떨 땐 다 그린 그림을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경우도 있죠. 내가 만족하지 않은 작품으로는 클라이언트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물론 인물화이기 때문에 까다로운 주문도 많고 자료가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오 작가는 작품 속 주인공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또 작품을 의뢰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만족을 주기 위해 모든 열정을 불태웠다.
현재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던 오 작가는 60세라는 늦은 나이에 홍익대 미술대학원 회화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누군가를 가르쳐 왔던 그녀가 더 많은 배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무엇보다 작품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해 대중에게 인정받는 최고의 초상화가로 남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현재 오 작가는 지난해에 이어 카톨릭 순교자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해당 작품은 경기도 이천에 어농성지에 전해질 예정으로, 공식적인 승인 단계를 거치면 표준 순교자들의 얼굴이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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