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배달부>는 현대사회의 배달 문화를 미술과 미술관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전시이다. 항로의 발견과 이동 수단의 발달, 무역과 물류 제도는 미술관의 탄생에 기여했고, 지속적인 변화를 거듭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역사를 토대로 미술(관)과 이동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즉 이동의 특징적 활동인 배달과 미술관의 주요 기능인 전시를 연결하여 두 교차지점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양상을 조망하고자 한다.
전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미술관을 배달합니다’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와 교육 등 여러 프로그램을 배달의 관점에서 조명하여 공적 기능과 역할에 대해 살펴본다. 1990년 문화부 출범에서부터 현재까지 미술문화를 보급하고 대중과의 연결을 확장하기 위한 공공지원 사업과 그것을 통한 공적 기능의 발자취를 조명하고자 한다. 1990년부터 2009년까지 <움직이는 미술관>(2001년 ‘찾아가는 미술관’으로 개칭), 다중이용시설의 <작은 미술관>(1999-2007) 등은 다양한 장소에 배달된 전시이며, <찾아가는 미술관 교육>(2011~)은 미술관 밖, 우리의 일상 속에서 미술을 감상하고 이해하도록 돕는 대표적 공공지원 분야이다. 또한, 미술은행(2005~)은 작품 대여·전시 활동 지원을 통해 미술문화 보급과 대중화에 기여하며 미술관의 역할을 확장한다. 나아가 2018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미술품수장센터는 작품을 보존·관리하는 수장고를 대중에게 개방한 국내 첫 수장형 미술관으로, 이번 전시에서 미술은행과 미술품수장센터는 작품의 이동, 개방과 확장의 개념으로 해석되었다. 이외에도 <삼청로 30, 미술관 앞> 등 새로운 소통 방식의 다양한 공공프로그램과 함께한다.
두 번째 ‘통신, 미술을 하다’는 소통을 전제로 하는 통신 매체로 초국가적 교류를 실험한 20세기의 주요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최첨단 통신 기술의 발달은 상호 연결, 소통, 시공간의 초월을 가져왔고, 많은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적극 도입하여 미술 영역을 확장하였다. 본 장은 배달의 영역을 소통과 교류라는 측면으로 확대하여, 선구적인 통신 미술의 자취를 조명한다. 마르셀 뒤샹의 <여행용 가방>(1941)과 1960~1970년대 플럭서스 운동은 작품의 복제본을 제작하고 유통함으로써 원본성과 아우라를 중요하게 여겼던 당시의 미술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우편 제도를 이용해 작품을 제작한 메일 아트 또한 예술과 삶의 구분을 지워 내려는 실험적인 도전으로, 작품을 전송하고 공동 제작하는 등 전통적인 작품 제작 방식을 탈피하고자 했다. 요셉 보이스, 앤디 워홀, 카이 히가시야마의 퍼포먼스 <글로벌 아트 퓨전>(1985)은 팩시밀리를 통해 각 대륙의 작가들과 평화의 메시지를 교류한 초국가적 통신 미술이었다. 또한, 상호 교류 장치로서 텔레비전의 가능성을 실험했던 백남준의 1980년대 작품 <X1, X2>는 통신의 기본적 특성인 소통의 확장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1990년대 금누리, 안상수의 <일렉트로닉 카페>는 컴퓨터 문화와 예술적 실험 정신을 담기 위해 기획된 공간으로, 초기 인터넷 통신 미술의 기념비적 성취를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 ‘미술이라는 배달’에서는 미술과 배달을 다양하게 연결한 동시대 작품을 통해 배달을 미술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해 보기를 제안한다. 배달은 물리적인 이동뿐만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의 전송, 예술의 유통, 자본주의와 첨단 물류체계 등 미술과 사회의 시의적 접점을 짚어내는 매개가 되었다. 10명의 국내외 작가가 참여했으며 2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에이미 시겔(미국)의 <소장이력>(2013)으로 시작된다. 르 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느레가 설계한 인도 찬디가르시의 가구 무역을 역추적하는 영상 작품으로, 미술작품의 거래, 유통 경로를 사색적이고 영화적인 연출로 포착한다. 송상희의 <정신과 기회>(2021)는 신대륙 발견과 무역 전쟁으로 희생당한 동물들, 교류와 이동으로 발병한 전염병 등의 이미지를 네덜란드 델프트 지역 블루타일 위에 그려 자본주의의 이면을 드러낸다. 왈리드 베쉬티(미국)의 <페덱스 시리즈>(2022)는 페덱스 규격 상자에 담긴 같은 크기의 유리 상자를 일반 운송으로 보내고 취급 시 발생하는 파손과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 작품 운송의 경로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광섬유를 타고 흐르는 메시지의 이동을 보여주는 방앤리의 <프린즈 인 더 리빙룸>(2022 버전) 외에도 박보나, 안규철, 조소희, 천경우, 함경아, 마이클 맨디버그 등의 작품으로 미술에서의 배달을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게 한다.
전시에서 배달은 소통과 개방, 이동 체계와 미술의 관계, 미술(관)과 공공을 두루 살피며 미술의 본질적 기능을 질문한다. 역사적으로 권력자의 전유물이었던 미술(관)은 점차 개방·공유되면서 대중의 공유물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예술의 매개자인 관람객을 전시 배달부로 설정하여 새로운 소통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역사상 가장 빠르고 다양한 이동의 시대에 이번 전시가 각자만의 도구와 속도로 의미 있는 예술적 경험을 배달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전시 배달부>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단어인 배달이 미술과 만나 만들어내는 다양한 변주를 통해 미술의 본질적인 기능을 다시 살필 수 있는 기회일 것이며, 미술관을 작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매개자인 관람객과 함께 새로운 미술관의 소통 방법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히며, “보이는 수장고 개편을 통해 장기간 외부 노출로 인해 작품 훼손의 위험이 있었던 이건희컬렉션을 항온항습이 유지되는 수장고에서 보존하며 소장품 관리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관람 방법으로 한국미술의 진수를 함께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라고 언급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