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2023년은 용산구 서계동에 위치한 백성희장민호극장(180석), 소극장 판(가변형 블랙박스 극장)이 관객들과 만나는 마지막 해로, 상반기 2개 극장에서 공연을 마친 후 하반기에는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소극장 공연을 선보인다. 기존 백성희장민호극장, 소극장 판, 국립극단 사무실이 위치했던 용산구 서계동 부지에는 문화체육관광부 복합문화시설 건립이 시작될 예정이다.
2023년 첫 공연은 명동예술극장에서 3월 16일에 개막하는 <만선>이다. 2021년 초연 당시 연기, 무대, 연출 삼박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수작으로 평가받으며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5톤에 달하는 장엄한 비가 무대에서 휘몰아치는 마지막 장면이 백미다. 이어서 4월에는 [제6회 중국희곡 낭독공연]이 관객과 만난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우수한 중국희곡을 선보이고 공연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프로젝트로, 2018년 한중연극교류협회가 첫선을 보인 이후 2021년부터 한중연극교류협회와 국립극단이 공동주최하고 있다.
5월에는 세계적인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4대 명작으로 꼽히는 <벚꽃 동산>이 무대에 오른다. 시간과 공간, 문화와 관습의 차이를 뛰어넘는 탄탄한 스토리로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으며 백상예술대상, 동아연극상, 이해랑연극상 등 연극계 주요 상에 이름을 올린 김광보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아 탄탄한 희곡을 바탕으로 정통 연극의 정수를 선보인다.
9월 명동에서는 해외 신작 <이 불안한 집>이 국내 관객에게 첫선을 보인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연극연출가인 지니 해리스는 로열코트씨어터, 영국국립극장, 스코틀랜드 국립극장,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 등 유수의 극장들과 활발히 작업하고 있다. 유럽의 현안을 다룬 작품부터 세계고전의 현대적 각색까지 다방면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그리스 비극인 아이스킬로스의 3부작 <오레스테이아>를 새롭게 해석한 <이 불안한 집>으로 2016년 영국 초연 당시 평단과 관객 모두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총 4시간이 넘는 이 대작은 2017년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한 이래 도전적이고 세련된 연출력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연출가 김정에 의해 더욱 치밀한 작품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10월 말부터 11월 중순에 걸쳐서는 국립극단 청소년극이 처음으로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단은 그동안 백성희장민호극장, 소극장 판에서 청소년극을 선보여 왔다. 558석의 명동예술극장에서 관객들과 처음으로 만날 청소년극 제목은 <TANK ; 0-24>다. ‘탱크’라는 강하고 역동적인 의미를 어린이·청소년에 부여했다. 0-24는 어린이·청소년의 연령 기준인 0세-24세를 의미하며 동시에 0시부터 24시까지가 반복되는 하루를 함축하여 우리의 인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청소년 배우가 성인 배우와 함께 출연하는 첫 번째 국립극단 청소년극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연말 명동예술극장의 대미를 장식할 공연은 많은 연극팬이 기다려 온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다. 2015년 초연 당시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동아연극상 대상 등 각종 연극상을 휩쓸며 연극계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어느덧 6번째 공연을 맞이하며 자타공인 국립극단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했다. 국립극단의 ‘지역공연 공모’를 통해 하반기 전국의 공연장에서 관객과 만난 후 연말 명동예술극장 무대에서 마지막을 장식한다.
한편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는 약 1년간 개발된 [창작공감: 작가]의 두 작품 <몬순>, <보존과학자>가 4월부터 6월에 걸쳐 올라간다. 2022년 공모를 통해 국립극단과 함께하게 된 두 명의 작가 이소연, 윤미희는 다양한 스터디와 워크숍, 과정공유회 및 피드백 등의 개발 과정을 거쳐 희곡을 집필했다. <몬순>은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인물을 보다 개인적이고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전쟁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그려냄으로써, 작가는 전쟁이 늘 우리 가까이에서 살을 맞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보존과학자>는 소멸과 영원, 보존과 복원이라는 키워드를 ‘보존과학자’라는 인물을 통해 관객과 나눈다. 유한한 시간의 균열 속에서 이미 무너지고 사라져버린 것들을 어떻게 다시 복원하고 보존시킬 것인가를 상징적이고 문학적인 언어를 통해 펼쳐나간다.
초여름, 소극장 판의 마지막 공연은 많은 사랑을 받아온 청소년극 <영지>다. 2019년 소극장 판 초연 후 2020년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앵콜 공연을 올린 <영지>는 완벽한 규칙을 만드는 어른들과 그 속에서 자라는 12살 영지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아이들이 나쁜 영향을 받을까 전전긍긍하는 어른들, 끝까지 자신의 모습을 지키고자 하는 영지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현실과 환상을 오간다. 2023년에는 기존 키워드 ‘12살’을 바탕으로 ‘나이’와 ‘장애’에 대한 새롭고 의미 있는 해석을 담아낸다. 정답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의 기준을 따르기보다는 나다움을 선택한 이 시대 수많은 ‘영지’들을 위한 메시지가 작품 곳곳에 녹아있다.
8월부터 10월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는 [창작공감: 연출]을 통해 2022년 한 해 동안 개발된 임성현, 한민규 연출가의 신작을 각각 선보인다. 현장 연출가들과 함께 창작극을 개발하기 위한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 연출]은 연극이 담아야 할 동시대적 화두를 연간 주제로 제시, 동시대적인 사유를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다. 2022년 주제는 ‘기후위기와 예술’로, 두 명의 연출가 임성현, 한민규는 이 주제를 바탕으로 작품을 약 1년 간 개발했다. 기후 감수성, 기후위기와 자본주의의 관계성 등을 리서치, 워크숍, 발표회 등을 통해 작품으로 개발하였고, 2023년 드디어 본 공연을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임성현 연출은 코로나19 이후 커다란 화두로 등장한 금융자본주의와 기후위기의 긴밀한 연관성과 모순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한민규 연출은 기후위기에 관한 글(시극)을 쓰는 한 작가의 이야기를 극중극 형식으로 풀어낸다.
김광보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2023년은 창작자와 관객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들로 꾸리기 위해 고심했다. 시대가 변해도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웰메이드 고전부터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가장 신선하게 담은 창작극까지 고르게 준비했으니 관객 여러분께서 취향을 찾는 여정을 떠나보시기를 권한다”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