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주의의 선구자이며 현대미술의 천재 화가로 불리는 피카소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 도예, 무대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한 분야에 안주하지 않은 열정적인 예술가였다. 특히 도예는 화가로서 괄목할만한 성취를 이룬 말년의 시기에 시도한 새로운 도전으로, 흙과 불의 특성에 매료되어 수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피카소는 1906년 스페인 출신 도예가 파코 프란시스코 두리오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도자를 접하게 되었다. 또한 그가 소개한 폴 고갱의 도예 작품을 보고 도자의 매력을 발견한다. 1929년에는 도예가 장 반 동겐과의 협업으로 화병을 제작하는 등 도예에 대한 호기심을 이어간다. 그리고 1946년 휴가차 머문 지중해 연안의 도시 발로리스 마두라 공방을 방문하게 되면서 도예와 본격적인 인연을 시작한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큰 새와 검은 얼굴>(1951)은 이번 전시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올빼미로 추측되는 새의 모습과 사람의 웃는 얼굴을 결합해 혼종의 이미지를 재창조했다. 새의 날개이면서 사람의 팔과 같은 화병의 손잡이는 피카소 도예 특유의 조형적인 특징을 담고 있다. 이처럼 피카소에게 동물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 주제로, 올빼미를 비롯해 비둘기와 염소, 개, 물고기 등이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피카소에게 인물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주제로 가장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었다. 전시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31점의 작품 역시 얼굴을 주제로 한 것이다. 얼굴의 정면과 측면을 음각과 양각 기법, 나이프 각인 등으로 장식하거나, 백토와 적토의 접시와 화병에 단순하고 재치있게 묘사하며 재료와 기법에 따라 무한하게 주제를 확장해 나갔다.
피카소는 1955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본을 제작했는데, 판화와 같이 원본을 기초로 여러 점의 작품을 제작하는 에디션의 개념을 도입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107점은 모두 에디션 작품으로, 피카소가 사용한 기법과 재료를 바탕으로 원본을 복제한 에디션 피카소, 작품 원판을 석고틀로 제작하고 점토로 찍어내는 엉프렁트 오리지널, 리놀륨 판화에 새겨 만든 도장을 점토 위에 눌러 제작한 뿌앙송 오리지널 드 피카소 등의 방식으로 에디션을 표기했다. 에디션 제작은 도예의 대중성과 범용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랐던 피카소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작업이었다.
전시는 여인, 신화, 얼굴, 투우 등의 주제별로 구성되었으며, 전시 공간은 도자 뒷면의 에디션 기록을 관람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또한 당시 마두라 공방의 모습과 작업 환경을 담은 사진 등의 아카이브 56점과 영화 1편(루치아노 엠메르, 피카소를 만나다, 2000)이 설치되어 창작의 여정을 안내해줄 것이다.
20세기 도자 역사에서 피카소의 작품은 유희적 도예로 분류된다. 도예 작업을 통해 해방감을 느꼈으며 흙을 만지면서 느낀 창작의 자유가 유희적 도예의 근간이 되었다. 피카소는 일상의 기물을 예술로 전환하는 도예 작업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노년에도 불구 그 어느 때 보다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번 전시는 1946년부터 프랑스 남부 도시 발로리스 등에서 꽃피운 피카소의 폭넓은 작품세계를 따라가는 여정을 담았다. 작품 곳곳에서 그의 재기발랄함과 천진함을 발견하는 유희적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공예의 도시 청주에서 개최되는 도예전인 만큼 실용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도예의 매력과 예술적 가치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피카소 도예>는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창작 세계를 도예의 측면에서 재조명하는 전시로, 현대미술과 도자의 긴밀한 관계를 발견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밝히며, “청주관의 상징적 공간인 보이는 수장고를 통해 주요 소장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임으로써 미술관의 기능과 작품 관람의 형태를 새롭게 확장해 나갈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