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센터와 크루즈 디에즈 재단은 2023년부터 크루즈 디에즈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작가의 생애와 예술적 업적을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여러 행사와 전시를 추진해 오고 있다. 이번 퐁피두센터의 프로젝트는 2014년 크루즈 디에즈가 직접 구상한 동명의 전시 프로젝트에서 비롯했다. 당시 작가가 고안한 프로젝트는 작가가 평생 진행했던 색에 대한 8가지 연구(색 추가, 물리적 색상, 색채 유도, 색 간섭, 색상 투과, 색 포화, 색도계, 공간의 색) 중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의 특수조명 빛으로 가득 찬 설치 작품 ▲<색 포화>와 동일한 색의 잉크로 인쇄된 ▲<색 추가>, ▲<공간의 색>, ▲<색채 유도> 시리즈의 평면작품들 그리고 관객이 직접 만지고 조작해 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색채 경험 프로그램>을 담았다.
퐁피두센터는 작가가 생전 고안한 특별 프로젝트 <RGB, THE COLORS OF THE CENTURY>를 전 세계에서 개최해 왔다. 이번 한가람미술관에서는 기존 프로젝트에서 전시되는 작품들뿐만 아니라 작가의 연구를 관통하는 RGB와 ‘빛의 원리’에 더욱 집중하고자 한다. 작가의 색채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노란색 유도-한국(Induction du Jaune Korea)>과 움직이는 선의 패턴을 프로젝터로 공간 전체에 투사하여 관객의 체험 요소를 더욱 풍성하게 해 줄 ▲<색 간섭 환경(Environnement Chromointerférent)>이 더해져 새로운 프로젝트로 소개된다.
카를로스 크루즈 디에즈는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현대미술의 선두주자로 소개된다. 1923년,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서 태어난 디에즈는 예술적 창의력과 과학적 호기심을 결합하여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창조했다. 작가의 색채 실험과 빛의 조작에 대한 혁신적인 작업은 크루즈 디에즈의 이름을 알렸다. 빛과 색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는 크루즈 디에즈가 현대미술에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게 한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
크루즈 디에즈는 젊은 시절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하며 색에 대한 관심을 확장해 왔고, 색 자체를 종이나 잉크 등 제한된 형식에서 해방시키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이후 물감의 ‘색소’가 아닌 그 색소가 공간에 방사되며 눈에 인식되는 ‘색상’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방식의 ‘공간의 빛’을 작품으로 제시해 왔다. 종이 위에서 물감을 직접 섞는 것이 아닌, 여러 색의 선들을 일정한 규칙으로 반복해서 배치하거나 여러 각도로 겹쳐놓는 그의 평면작품은 옵아트(Optical Art, 착시현상을 일으켜 환상을 보이게 하는 과학적 예술 장르)와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작품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을 포함하는 예술 장르)의 영역을 넘나들며, 관객들에게 색과 빛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특히 빛의 3원색인 RGB 색 모델과 감산 혼합의 CMYK<파랑(Cyan), 자주(Magenta), 노랑(Yellow), 검정(Key=Black)> 색 모형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어 색채학의 원리를 탐구했다. 이를 통해 그는 실제로 작품에는 존재하지 않는 색상과 패턴을 창출하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크루즈 디에즈의 작품은 색채학과 빛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의 예술은 단순히 과학적 실험 이상으로, 관객들에게 진정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크루즈 디에즈 - RGB, 세기의 컬러들> 전시는 색채학의 원리를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전시이다. 공간 설치, 평면, 영상,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등 다양한 형식의 결과물은 작가가 빛과 색을 인식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연구해 온 자취를 따라가게 한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시선으로 색을 바라보며 시각에 대한 사고를 확장시켜주는 특별한 예술적 경험이 될 것이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