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의 대가이자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윤고방 작가의 인생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 만큼 파란만장하다. 1947년생인 그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5년간 고아원 생활도 했다. 그때 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같은 대문호의 명작들을 접했고, 이는 윤고방 작가의 인생에 있어서 굉장한 전환점이 됐다. 세계 명작이 한 사람을 엄청나게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체감한 그는 대학 졸업 후 경남방송에서 PD로 잠시 일하다가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38년간 몸담으며 후학 양성에 최선을 다했다. 교육자로서 삶을 충실히 사는 가운데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미술과 문학에 관한 열정을 지속해서 발전시킨 그는 심산 노수현 선생에게 산수화 및 사군자를, 홍석창(홍익미대 학장) 교수에게 문인화 지도를 받았고, 일중 김충현 선생에게 서예를 사사하며 전통 예술의 기반을 다졌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문인화, 시화집, 도자기, 서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융합 예술’이라는 새 지평을 열고 있는 윤고방 작가는 개인전 6회 및 국내외 초대 그룹전 30여 회에 참가했으며,1978~1982 이원섭,박재삼, 이근배 시인 추천으로 현대문학과 한국문학 통해 등단 후 『하늘 가리고 사는 뜻은』, 『바람 앞에 서라』, 『낙타와 모래꽃』, 『쓰나미의 빛』, 『유랑하는 예술혼』 등을 펴냈다. 또한, 그는 한국미술협회 현대문인화 분과 이사, 시 계간지 ‘상징학연구소’ 작가 포럼 의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미네르바문학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국내 예술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융합 예술의 정수, 『유랑하는 예술혼』
“제게 ‘시서화-융합예술’은 절체절명의 운명적 명제입니다. 21세기 한 예술 장르로 존재 의미를 부여받은 ‘시서화-융합예술’과 개인으로서 추구하는 예술 양식이 아주 별개의 것일 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술가 개인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사회 현상으로부터 창의적 탈출과 반역을 도모해야 할 숙명적 존재이므로 당연히 갈등과 반목을 일삼게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운명의 신이 내린 ‘시서화-융합예술 창작 오계’를 마음속에 굳게 새기며 남은 생애의 예정된 험로를 기꺼운 마음으로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윤고방 작가는 회한의 6,500km 시베리아 횡단 시화집인 『유랑하는 예술혼』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시화집이야말로 그의 그림, 시, 산문 등이 한데 어우러져 융합 예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화집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 여행을 통해 우리 선열들의 투쟁과 개척 정신을 회상하는 6,500km 대장정의 탐방록이며, 각 권 28면으로 세 권 합계 84면에 시화 40점과 운문 11편, 산문 41편으로 구성돼있다. 특히 이 시화집은 억압적 현실 세계에 관한 윤고방 작가의 저항 정신의 그림들 그리고 시와 산문이 끝없이 이어 달리는 대륙의 철도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것을 감상할 수 있으며, 그의 유랑하는 예술혼의 아우라를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그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진실과 인간 내면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자연에서 얻은 영감으로 형식화되지 않은 개성적 작품을 탄생시키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나의 인생에서 시와 그림은 별개가 아닌 한 덩어리
“제 인생에서 시와 그림이 별개로 생각 들지 않습니다. 그저 한 덩어리죠. 한 인간이 지닌 예술 의식과 주제에 있어서 제 시적 감수성과 미술적 창조 의도는 나뉠 수 없고 융합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융합 시대라고 해도 단일 예술과의 부딪힘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것이 강하게 부딪혀 요란한 굉음을 낼수록 거기서 새로운 예술에 대한 자극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기 신장을 기꺼이 내어주고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도 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오면서 사랑하는 아내가 유명을 달리한 윤고방 작가. 이러한 아내를 향한 애틋함으로 적어 내린 다섯 번째 시집이 곧 출간되며, 올가을에는 전시도 예정 중인 그가 앞으로도 평생 운명으로 알고 매달려온 융합 예술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출처 : 비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