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팝아트의 선구자로 인정받으며, 동양의 앤디워홀로 불리우는 작가 케이이치 타나아미는 아트 디렉터, 애니메이터, 그래픽 아티스트, 디자이너 등 다방면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세계적으로 큰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켜 온 작가로, 작가의 독창적인 작업은 훗날 무라카미 다카시, 요시토모 나라로 이어지는 슈퍼플랫 미술 운동의 전신이 되었다.
작가 케이이치 타나아미는 스스로를 ‘이미지 디렉터’라고 지칭하며 ‘고급’과 ‘저급’,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독창적인 길을 개척해 왔다. 본 전시는 독보적 작품 세계를 펼쳐온 케이이치 타나아미가 활동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그림, 콜라주, 조각, 애니메이션, 영상, 설치물 등 실험적인 도전을 통해 제작한 다양한 작품들을 모두 만나 볼 수 있다.
대림미술관 개관 이래 역대 최대 규모로 꾸려진 이번 전시는 본 전시관 외, 미술관 옆집으로 전시 공간을 확장해 전후 문화, 대중 매체, 기억과 꿈, 죽음과 낙원 등 주제와 매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화려한 색채를 바탕으로 전 생애에 거쳐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구축해 온 작가의 주요 작품 700여 점을 총망라해 소개한다.
미술관 1층에 자리한 전시의 첫 번째 공간 INTO TANAAMI’S WORLD는 세속과 신성함을 잇는 다리를 형상화한 압도적 크기의 〈백 개의 다리 A Hundred Bridges〉(2024) 작품이 시선을 압도한다. 꿈과 현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흐리는 작품은 몽환적인 감상을 불러일으키며 ‘케이이치 타나아미 세계’로의 포문을 연다.
이어지는 2층 공간 IMAGE DIRECTOR는 서양의 대중문화와 팝아트의 영향을 받아 순수 예술과 상업 예술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선보인 작가의 포스터, 콜라주 작품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미국 만화와 팝아트에서 영향을 받아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한 〈노 모어 워 NO MORE WAR〉 시리즈(1967),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미국 대중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해 제작된 콜라주 북 시리즈, 2012년 콜라주 북을 다시
발견한 후 이에 영감을 받아 새롭게 제작된 〈기억은 거짓말을 한다 Memories Tell Lies〉 시리즈(2023)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아시아 팝아트를 선구한 케이이치 타나아미의 개척자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의 3층 공간 CREATIVE ILLNESS는 케이이치 타나아미가 어린 시절에 체험한 전쟁이나 생사를 가르는 병마의 경험을 계기로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 환각 등 심리적 불안이 창의적 원동력이 되어 제작한 조각, 회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결핵으로 투병하던 시기, 과거 중국에 방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동양의 길상적 아이콘들을 활용하여 제작한 〈도키와마츠 Tokiwa-matsu〉 시리즈(1986-87), 어린 시절 경험한 기억을 모티브로 제작한 〈생명 탄생 The Birth of Life〉 시리즈(c.1990)와, 〈앨리펀트 맨 Elephant Man〉 시리즈(c.1990), 팬데믹 기간 꾸준히 제작한 〈피카소 모자상의 즐거움 Pleasure of Picasso – Mother and Child〉 시리즈(2020-2024)는 창작을 향한 작가의 열정을 보여주며 끊임없는 예술적 탐구와 혁신을 증명한다.
미술관의 4층 공간 TANAAMI’S UNIVERSE는 케이이치 타나아미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주는 조각, 영상, 실크 스크린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기괴한 모양의 생물을 혼합해 생명력 넘치는 조각상을 묘사한 〈기상천외한 몸 Incon-ceivable Body〉(2019)을 필두로, 만화가 후지오 아카츠카와의 협업으로 제작된 〈거울 속의 내 얼굴 My Face in the Mirror〉(2022), 〈기억의 미로 Maze of Memory〉(2022) 등의 작품은 존재가 곧 장르인 케이이치 타나아미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온전히 느끼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하게 확장되어 선보이는 미술관 옆집 2층 전시 공간 TANAAMI’S CABINET에서는 아디다스, 스투시, 준야 와타나베, 바비 등 전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브랜드와 유수의 아티스트로부터 러브콜 받아 이어진 다채로운 콜라보레이션 작업과 오브제를 비롯해 실험 영화, 애니메이션, 도서 등을 선보이며 전 생애에 거쳐 순수 예술의 틀을 넘어 다양한 매체를 끊임없이 탐구해온 작가의 풍부한 창작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특정 장르나 관습적 규칙에 대한 제한을 거부하며 다학제적 패러다임을 정립해온 케이이치 타나아미의 삶의 궤적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트렌드를 좇지 않는 ‘나다움’에 대해 상기시키며,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개인적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결과물들은 시대를 초월한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한다. 슈퍼플랫 장르를 선구하고 미술사적 맥락에 큰 영향을 미친 케이이치 타나아미의 창작 여정이 담긴 본 전시는 관람객들을 압도하며 작가의 작품 세계에 푹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