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화랑은 10월 15일부터 11월 23일까지 재독화가 노은님의 회고전 <빨간 새와 함께>를 개최한다. 1992년 <노은님 展>을 시작으로 2015년 <내게 긴 두 팔이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을 안아주고 싶다> 이후, 10년 만에 현대화랑과 함께하는 이번 개인전은 노은님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1980~1990년대의 평면 작업 20여 점을 통해 '생명의 즉흥시'라고 불렸던 그의 작업 세계의 핵심을 살핀다. 특히 새, 고양이, 물고기, 호랑이, 오리 등의 대상을 간결한 점과 선, 강렬한 색채의 필치로 담아내어 자연과 생명을 생동하는 시로 담아낸 작가의 대작을 다수 공개한다.
노은님은 회화뿐 아니라 설치와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유롭고 생명력 넘치는 작업 세계를 펼쳤다. 동양의 명상과 독일의 표현주의를 연결하는 그의 화면에는 생명력 넘치는 힘과 시가 넘친다. 그는 무한한 자연과 생명의 흔적을 화면에 끊임없이 펼치며 특유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창조하였다. 하늘을 헤엄치는 물고기나 물속에서 날개를 퍼덕이는 새, 초승달 모양의 배를 타고 유영하는 인물 등 자유롭게 표현된 화면은 화가가 무엇을 그리겠다는 의도가 아닌, 꾸밈이 없는 무의식의 상태에 도달하여 자연스럽게 펼친 것이다. 즉, 예술가로 타고난 화가 자신의 존재 본질과 무의식적으로 창조된 생명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형상들이다.
1946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노은님은 1970년 독일로 건너가 1973년 국립 함부르크미술대학에 입학하여 회화를 전공하고,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활발히 전시했으며, 1984년에는 백남준, 요셉 보이스와 함께 '평화를 위한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1990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함부르크 미술대학(HFBK)의 정교수로 임명되었으며, 2019년 독일 미헬슈타트 오덴발트미술관에는 그를 기리는 영구 전시관이 개설되었다.
1982년, 독일 작가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함부르크 예술 후원금과 본 시립 쿤스트폰즈상을 동시에 수상하였고, 18세기 후반에 지어진 함부르크의 알토나 성 요하니스교회에는 480장으로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가 영구 설치되어 있다. 당시 동양 출신 작가가 유럽의 유서 깊은 문화재에 작품을 영구히 설치한 사례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렇듯 작가는 1980~1990년대에 삶과 예술세계에서 절정을 맞이하며, 거대한 화면을 힘 있고 자유로운 붓질로 가득 채우며 생명력이 충만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장식을 배제한 검고 굵은 선은 유연하게 움직이며 화면의 여백과 교감하고, 어떠한 구속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와 독창성을 드러낸다.
전시장에는 자연의 신비 속에서 예술적 세계를 찾아가는 노은님의 여정이 담긴 바바라 쿠젠베르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내 짐은 내 날개다>(1989)를 상영하며, 작품과 텍스트 너머의 삶을 함께 보여주고 보다 입체적인 관람을 제공한다.
1970년, 노은님이 독일로 건너간 해와 현대화랑이 개관한 해가 같다. 이번 전시는 반세기 넘는 세월을 한국 현대미술사의 주요한 축으로 자리해 온 작가의 자유롭고 역동적인 예술 세계를 현대미술사의 주요한 맥락을 함께 써온 현대화랑에서 선보이는 뜻깊은 자리이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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