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옻칠 공예 제품이라고 하면 장롱이나 서랍 같은 가구를 떠올린다. 하지만 창조 경제 시대에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청봉옻칠공방이 만든 ‘원목옻칠 밀폐옹기(브랜드명 아리지안)’는 냉장고 안에서 음식 발효를 돕는 자연 숙성 용기. 천연도료로 항균성과 방습성을 갖춘 탁월한 이 옹기는 조만간 김치냉장고처럼 집집마다 보급될 날이 머지않았다.
100세 시대, 무병장수를 꿈꾸는 현대인들은 식기 하나까지도 천연 재료로 만든 제품을 쓴다. 천연도료인 옻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 옻은 살균에 강해서 옻칠을 만지기만 해도 살균처리가 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생활용품에도 옻칠을 활용한 제품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 전통 공예제품인 옹기를 식품용기로 개발한 청봉 유철현 선생은 옛날 겨울철 장독을 떠올리며 원목옻칠 밀폐옹기를 만들었다. 겨울에 김장을 해서 땅속에 묻으면 이듬해까지 김치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에 착안, 옹기를 식기로 만들어보겠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것.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강원도 등지에서 채취한 흙을 1200도 고온에서 구워 만든 옹기와 물푸레나무로 만든 뚜껑에 옻칠을 7번 해서 만든 것이다. 옹기 역할의 핵심인 뚜껑과 옹기의 접합 부분에 실리콘 패킹 기술을 써서 발효 기능도 유지시켰다.
“옻칠의 장점을 살리면서 실용적인 용기를 만들 방법을 고민하다 제품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자연과 건강을 중시하는 시대에 환경호르몬을 발생시키지 않고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 옹기의 등장은 분명 생활문화를 변화시켜나갈 것입니다.”
지난 36년 동안 옻칠 가구 제품만 만들어온 ‘옻칠 장인’인 유 대표는 왜 옹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걸까. 주상복합 붐이 일던 2000년대 그 역시 유럽 가구를 수입해 판매를 하기도 했지만, ‘우리 것’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사명감으로 전통 공예를 내버릴 수 없어, ‘어떻게 하면 전통 공예의 장점과 현대 가구의 강점을 결합한 제품을 만들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생활용품을 비롯한 소품과 선물용품으로 관심을 돌리고 제조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독일, 밀라노 등 세계의 가구 컬렉션을 보러 다니면서 섭렵한 지식과 안목을 활용해 전통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 기술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원목옻칠 밀폐식품옹기인 셈이다.
원목옻칠 밀폐옹기, 생활용품으로 각광받을 것
디자인이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의 기능을 모두 갖춘 생활용기의 탄생이 시장성을 갖게 된 것은 현대인의 생활 패턴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친환경, 웰빙, 안전, 건강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주부들이 생활용품의 일부로 옹기를 적극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음식이 발효되면서 일정한 온도로 맛을 유지해주는 옹기를 많이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아파트는 공기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옹기 냄새를 잡지 못하면 기능이 아무리 좋아도 팔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 음식도 발효되는 옹기를 만들까 고민하다가 밀폐용기를 떠올렸죠. 김치 냉장고에 있는 옹기를 떠올려보세요.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습니까?” 하지만 평범한 옹기 역시 밀폐옹기로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 대표는 나무와 옻칠을 결합하면 옹기의 발효 기능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뚜껑을 따로 제작했다. 옹기 안에서 발효 가스가 올라오면 음식에 순환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익도록 만드는 이 기술은 현재 특허 출원 중이다. 또한 유 대표가 1년여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옹기 제품은 냉장고에 들어가면 탈취 효과가 생기고 김치냉장고를 일정한 온도로 유지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옹기를 구입한 사람 열이면 열 모두 대만족하는 제품이기도 하다. 현재는 강남과 분당의 일부 매장에서만 판매하고 있는 원목옻칠 밀폐옹기는 조만간 백화점 입점, 식품기업과의 제휴 등을 통해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선을 보일 예정이다. 얼마 전에는 일본 백화점 초청을 받아 유 대표가 일본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직접 선보이기로 했다. “그동안 청와대나 기업에서 귀빈 선물로 저희 청봉옻칠공방에서 제작하는 옻칠 작품을 구입해갔는데, 앞으로는 ‘공예의 일상화’란 비전을 이루기 위해 개인 소비자들도 편하게 쓸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자 합니다. 수작업이라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단가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긴 해요. 하지만 장인정신을 갖고 합리적인 시장 가격으로 맞추면 기업이나 단체 고객 등의 선물용 주문이 늘어날 것으로 확신합니다.” 자연과 공예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청봉옻칠공방의 ‘원목옻칠 밀폐옹기’를 꼭 기억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