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재凡才와 수재秀才는 포부의 차이에서 결정되며, 인생의 목표를 일신의 성공에 두는 자는 결코 세계를 품은 이와 경쟁할 수 없다. 그리고 역사는 사회와 인류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이들, 개척자들을 기억한다. 기자는 2015년 새해, 백점기 부산대학교 해양공학과 교수 (선박해양플랜트기술연구원장, 로이드선급우수연구센터장)를 찾았다. 그는 영국왕립조선학회와 미국조선해양공학회를 이끄는 석학이자 당대 최고의 국제 선박·해양플랜트 안전 분야 권위자로서 ‘사회·국가·인류에 기여하는 연구’를 소신으로 삼고 지금까지 노력을 거듭해왔다.
백점기 교수(선박해양플랜트기술연구원장)는 활력 가득한 특유의 미소와 악수로 기자를 맞았다. 그가 데이비드 W. 테일러 메달 수상 직후 만났었으니, 만 1년을 채운 후 재회하는 것이다. 그간 백점기 교수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영국 왕립조선학회에서 백점기 교수를 기려 백점기 상 Jeom Kee Paik Prize을 제정했으며, 올해 윌리엄 프루드William Froude 메달의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아울러 경남 하동군에 건립 중인 해양플랜트 종합시험연구원도 1단계 공사가 마무리되어 이제 구체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으니 연구와 인프라 설비 구축 양면에 걸쳐 괄목할 성과를 거둔 셈이다.
조선해양공학계 최고 권위자로 ‘우뚝’
백점기 교수는 2013년 미국 조선해양공학회 최고상인 데이비드 W. 테일러 메달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바 있다. 그리고 금년에는 영국왕립조선학회의 윌리엄 프루드 메달 수상자로 확정되며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 역사상 데이비드 W. 테일러 메달과 윌리엄 프루드 메달을 모두 수상한 학자는 단 2명. 한명은 이미 작고한 영국의 더글라스 폴크너 교수이며, 또 다른 한명은 영국의 존 칼드웰 교수다.
“윌리엄 프루드는 프루드 수를 고안함으로써 선박설계 분야에 큰 족적을 남긴 세계적 공학자입니다. 영국왕립조선학회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55년 윌리엄 프루드 메달을 제정한 이후 지금까지 단 24명의 ‘영국인’ 과학자에게 영예를 허락했지요.”
높은 자존심과 순혈주의의 벽으로 인해 윌리엄 프루드 상은 그 어떤 국제 학술상보다 평가 잣대가 냉정하기로 유명하다. 후보자 추천에서 최종 수여자 선정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엄격한 평가 잣대를 지켜온 최고 권위의 상인 것이다. 특히 평가 기준에 완벽히 부합하는 특출난 학자가 나올 때까지 절대 메달 수여를 고려하지 않는 높은 자존심은 윌리엄 프루드 메달을 전세계 조선해양공학자들이 꿈꾸는 최고의 명예로 자리 잡도록 만들었다. 이렇듯 가히 영국 해양력의 상징적 존재라 부를 만한 본 상을 데이비드 W. 테일러 메달의 주인공이자 동양인 학자인 백점기 교수가 연거푸 쟁취했으니, 의미와 시사점이 크다. “非영국인 학자로서 최초로 윌리엄 프루드 메달을 받게 됐습니다. 데이비드 W. 테일러 메달에 이어 조선해양공학자가 꼽는 최고의 명예를 모두 성취하게 돼 대단히 감격스럽습니다. 애초에 상과 알량한 명예를 바라고 연구해왔다면 지금과 같은 성취를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제 위치에서 미력하지만 우리 사회·국가 나아가 인류를 위해 조금이나마 공헌하겠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연구에 집중한 점들을 영국왕립조선학회와 미국조선해양공학회 측에서 좋게 평가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기쁨에 취하지 않고 학자로서 계속하여 기여할 방안을 찾고 노력을 경주하겠습니다.” 백점기 교수는 올해 4월 30일 런던에서 열릴 예정인 영국왕립조선학회 연차총회에서 정식으로 윌리엄 프루드 메달을 받게 된다.
영국 왕립조선학회RINA, 백점기 상Jeom Kee Paik Prize 제정
영국 왕실아카데미 산하 영국왕립조선학회가 부산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백점기 교수의 이름을 딴 학술상을 제정해 내년부터 시상에 들어간다. 영국 왕립조선학회는 지난해 10월 31일 상임이사회를 갖고 이 같이 발표했으며, 상의 이름은 백점기 상Jeom Kee Paik Prize으로 정했다. 세계 조선해양학계에 기여한 백 교수의 공적을 기리는데 의미가 있는 이 상은 학회의 국제저널에 선박 해양플랜트 설비 구조물 분야의 최우수 연구논문을 발표한 만 30세 이하의 젊은 연구자 1명을 매년 선정해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왕립조선학회는 1860년에 설립되어 미국조선해양공학회와 함께 조선해양계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영국 왕실아카데미 산하 학술단체로 SCIE급 국제저널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본 학회에서 금년부터 젊은 과학자들의 연구를 독려하고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새로 학술상을 제정하게 된 것입니다. 학술적 성과로 상을 받는 것도 영광스런 일입니다만, 학자에게 있어서 본인의 이름을 딴 상이 제정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영광이지요.”
아울러 현재 영국왕립조선학회 이사회에 백점기 상의 대상을 만 30세 이하에서 만 35세로 상향조정하는 방향의 수정안이 계류 중이다. 대상군을 넓혀 가급적이면 더 우수한 과학기술자들을 발굴하기 위함이며 그만큼 학회에서도 백점기 상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외 아우르는 활발한 학술교류 주도
백점기 교수는 1년 중 상당 기간을 해외에서 보낸다. 벌써부터 한 달간의 영국 체류를 준비 중인 그는 국제 학술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연구 중심의 공립 종합대학교인 영국 런던대학교University College London, UCL의 초청으로 한 달간 머무르며 특강, 공동연구등 국제교류 활동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해왔듯, 1년에 1~2개월 정도는 런던을 비롯한 외국 대학교에서 활동하며 부산대학교와의 교류 계기를 마련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백점기 교수는 2017년 발간을 목표로 노르웨이 굴지의 에너지 기업 스타토일Statoil 소속 전문가와 공동으로 영문 교과서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해양플랜트 설계 엔지니어링에 관한 내용이 큰 줄기를 구성하고 있다.
“연구의 궁극적 목표는 기술 개발을 통한 인류사회 공헌에 있습니다. 학자는 자신이 발표한 논문들이 학계와 산업계에 훌륭한 지식 인프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요. 연구실을 벗어나 소위 ‘현장’의 언어를 적극 받아들임으로써, 기업의 의사 결정권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논문과 교과서를 저술하는 것이야말로 공학자의 근본적 사명중의 하나입니다.”
또 백점기 교수는 경남 하동 갈사만 소재 해양플랜트 종합시험연구원에도 많은 애정을 쏟고 있다. 제1단계 공사가 마무리되어 올해 5월부터 본격적인 시험가동에 들어갈 본 연구원은 화재 시험동, 폭발충격 시험동, 대규모 구조파괴 시험동, Subsea 시험동, 중량물낙하 시험동, 설계 엔지니어링 및 연구지원동, 야외종합 시험장이 완공되었다. 또 2단계 사업으로 Subsea 통합 실증베드 구축사업이 지난해 말부터 진행 중에 있다. 현재 기본설계 작업을 수행중이며, 3년간에 걸친 공사 후 2017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이제 1단계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총 1천억원 규모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것이며,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5할씩 예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해양플랜트 종합시험연구원이 완성됨으로써 경남 하동 갈사만은 해양플랜트 연구 교육단지 중심, 거제는 생산단지 중심으로 국내 해양플랜트 산업의 메카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백점기 교수가 하동 해양플랜트 종합시험연구원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이곳에 영국 애버딘대학교 대학원 분교 설립이 최종 합의됨에 따라, 석유 공학 및 해양플랜트 공학 석·박사급 고급 기술인재 및 전문경영인 석사 (MBA) 인력 양성과 함께 첨단설계 엔지니어링기술 공동연구개발의 토대가 구축됐기 때문이다. 영국 애버딘대학교 대학원 하동캠퍼스는 오는 2016년 9월 개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영국 애버딘대학교는 1495년 (연산군 1년)에 설립된 영국 스코틀란드 최고의 대학으로 세계 최초의 MRI 기술 개발 공로의 노벨물리학상을 포함하여 5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였고, 석유 천연가스 유전지로 유명한 북해지역 최고의 해양플랜트 산업도시인 애버딘에 위치하고 있다. 애버딘은 영국내 95%의 해양플랜트 기업체가 모여 있는 해양플랜트 산업 중심도시다.
“애버딘대학원 하동캠퍼스를 유치함으로써 한국은 크게 낙후된 해양플랜트 설계 엔지니어링 전문 인력 양성과 관련 첨단기술 연구 기반을 구축, 선진해양강국으로 도약할 발판을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하동 해양플랜트 종합시험연구원이 가진 세계 최대 최고 규모의 시험 연구 설비를 연계 활용하여 국내외 우수 인재들을 교육하고 첨단기술을 연구개발해서 한국의 해양플랜트 설계 엔지니어링 기술 자립화는 물론 국제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일신 영달보다 사회·국가·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학자
백점기 교수는 네 가구가 살고 있던 경남 사천의 작은 시골 청곡靑谷 마을에서 9남매 (4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백 교수를 출산했더 당시 모친의 나이가 43세였다.
“제 고향 지명을 따와 아호로 삼았습니다. 초등학교를 1년 일찍 입학한 저는 부산대학교 조선공학과 학부 3학년 때 군대를 만기 제대하고 동기들보다 1년 일찍 대학을 졸업한 뒤 대기업 현대그룹의 중추 기업인 현대조선(현 현대중공업)에 취직했죠. 당시 유조선이나 살물운반선과 같은 설계가 비교적 쉬운 배의 기본설계 기술조차도 자립화 되지 않은 현실을 보고 대단히 실망했어요. 결국 현대조선을 과감히 사직하고 당시 세계 1위 조선강국인 일본으로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동경대학을 비롯하여 입학 허가를 받은 여러 대학 중에서 당시 비선형구조역학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던 우에다 유끼오 교수의 지도를 받기 위해 오사카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한다. 석·박사 전 과정에 걸쳐 입학금과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은 장학생으로 피나는 노력을 경주한 결과, 만 29세에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이 동안에 아내와 결혼, 1남 1녀의 자녀도 얻게 된다. 석사학위를 마친 후 미국 MIT에서 박사과정 입학 허가서를 받고 도미渡美를 준비하던 중 지도교수님의 만류로 오사카대에서 박사과정을 계속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연속성을 가진 연구를 지속할 수 있게 돼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론을 정립하는 등 오히려 더 큰 학문적 성취를 이뤄내는 계기가 되었다.
2년간에 걸친 대전 선박연구소에서의 활동과 부산대 조선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후 30대는 정말이지 숨 가쁘게 지나갔다. 연구자금을 얻기 어려운 1990년대 당시 자신의 월급을 털어가며 해외 학술대회에 적극 참여해 논문을 발표하고 해외 저명 학자들과 토론하고 교류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만 보고 질주하던 백점기 교수는 문득 자신이 이토록 학문에 열중하는 이유를 자문했고, ‘세상을 조금이나마 이롭게 하는 학자가 돼야 겠다’는 답을 얻었다. 이때가 만 40세가 되던 해였다.
이처럼 순수했던 젊은 학자의 열정은 지금까지도 식을 줄 몰랐다. 자신의 연구가 실질적으로 학계와 산업계에 기여할 수 있기를 소망했고, 이는 국제무대에서의 활동 폭을 넓혀가는데 큰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결국 미해군 제독 데이비드 W. 테일러와 윌리엄 프루드 교수처럼 자신만의 연구 분야를 개척해 최고의 성취를 달성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지금까지의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학자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며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일신의 영달보다 우리 이웃과 사회·국가 나아가 인류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평생의 소신으로 삼아온 백점기 교수의 식지 않는 열정이 또 어떤 성과를 거두게 될지 기대된다. 이문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