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특급배우다웠다. 지난 10월 16일 종영한 SBS 주말드라마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은 ‘김희애표 로맨틱 코미디’로 방송 내내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20대 사랑 못지않게 때론 티격태격하기도, 때론 알콩달콩 하기도 하며 중년의 달콤한 사랑을 그린 이 드라마가 시청자의 공감을 사고 인기행진을 이어나갈 수 있던 가장 큰 중심에는 바로 김희애라는 존재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5급 공무원 과장 고상식(지진희)과 어떤 일이든 일어나길 바라는 방송사 드라마 PD 강민주(김희애)를 통해 40대의 사랑과 삶을 공감대 있게 담아낸 작품으로, 일본 드라마 ‘최후로부터 두 번째 사랑’을 원작으로 했다. 긴 대사를 통해 중년의 삶과 사랑에 대해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 원작과 다르게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 어울리는 콘셉트로 보다 가볍고 발랄하게 그려냈다. 방송 전부터 주목받은 것은 다름 아닌 팔색조 배우 김희애의 색다른 연기 변신이었다. ‘특급배우’로 거듭난 드라마 ‘밀회’에서는 대세 배우 유아인과 뜨거운 불륜 로맨스를, ‘미세스캅’에서는 카리스마를 내뿜는 여형사로 분해 중년의 나이임에도 액션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등 최근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그의 로맨틱 코미디 선택은 충분히 대중의 기대심리를 자극하게 했다. 벌써 30년이 넘는 그의 연기 내공이 선사할 중년의 로맨틱 코미디가 어떤 모습을 그려낼지 방영 전부터 궁금증을 자아낸 것. 역시나 김희애는 연륜과 내공으로 강민주를 연기해냈다. 강민주는 인생에 설레는 일이 생기길 바라는 소녀 감성도 있지만 한편으론 나이가 나이인 만큼 자신이 늙어가는 것에 누구보다도 서글퍼하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사회를 기준으로 하면 성공한 사람이지만, 40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은 미혼여성이기도 한 강민주는 자신이 아파도 돌봐줄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에 서러워했다. 이러한 40대 여성의 섬세한 심리는 다름 아닌 김희애의 연기와 만나 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는 평이다. 강민주와 고상식은 첫 만남부터 티격태격 싸워댔다. 말 그대로 이 둘의 로맨스는 시작이 그러했던 것처럼 달콤살벌했다. 처음부터 악연으로 시작됐는지라 둘은 얼굴만 보면 으르렁대기 바빴고, 살벌하게 대립했다. 하지만 어느새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며 사랑에 빠졌다. 강민주와 고상식은 아픈 기억을 떠나보내고 사랑을 시작하며 서로를 향한 마음을 수시로 고백하며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그동안 참아왔던 스킨십을 과감히 해내고, 사랑에 빠진 연인이란 것을 방증하는 오그라드는 멘트 또한 거침없이 내뱉으며 중년의 사랑이 재미없으리란 선입견을 대번에 깨뜨렸다. 김희애는 이러한 ‘로맨틱’에도 충실하면서 기꺼이 ‘코미디’에도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였다. 코미디 연기에서는 여배우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완벽하게 망가졌다. 극 초반부터 몸을 사리지 않는 번지점프 신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는 몸 사리지 않는 코믹 연기를 제대로 방출해내며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의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이러한 서슴없는 망가짐에는 그의 뚜렷한 연기철학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김희애는 “배우니까 많은 분이 돌봐주고, 챙겨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결코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배우는 인간의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사람인데, 실생활에서 공주 대접만 받는다면 과연 인간의 삶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에게 배우는 직업일 뿐이고, 실생활의 나는 우아함과는 반대”라고 솔직한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작품을 마치고 중간 중간 갖게 되는 휴식기에 대해 “일부러 쉰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휴식이라고 해도 새로운 곳을 돌아다니면서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기 때문에 이를 통해 나 자신이 변화하는 걸 느낀다. 그러다보면 이것을 단순히 휴식이라고 구분 짓는 것이 모호해진다”면서 “이순재 선생님처럼 40년, 50년 오래 연기하는 배우야말로 정말 강하고 위대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오래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운동만큼은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한다”고 자기관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였다. 한편 김희애는 올 초 우리나라의 최고 연예기획사라 불리는 YG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맺어 큰 화제를 모았다. 이 계약이 더욱 관심을 모았던 이유는 김희애는 데뷔 이래 줄곧 혼자 활동해오다 생애 첫 소속사로 YG엔터테인먼트를 택한 것이기 때문. 이에 대해 김희애는 “YG엔터테인먼트와의 첫 만남을 통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능력과 더불어 배우에 대한 이해와 무한한 애정을 느껴 많은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 나의 첫 소속사인 만큼 기대가 크다(웃음)”고 계약소감을 밝혔다. 이렇듯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날’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후 33년에 걸쳐 대중들에게 한결같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지금껏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희애는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미(美)중년, 김희애가 자신 있게 걸어 나가는 발걸음이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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