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여왕’ 김연아가 대한민국 스포츠 선수로서 최고 영예인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김연아는 지난해 50세 이상이라는 다소 엉뚱한 나이 제한에 묶여 선정되지 못했지만, 그 기준이 올해 없어지자마자 바로 역대 9번째 스포츠영웅의 영예를 안게 됐다. 이에 그는 지난 11월 2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16 스포츠 영웅 명예의 전당’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날 김연아는 “그동안 스포츠 영웅들은 원로였는데 아직은 어린 내게 스포츠 영웅이라는 멋진 칭호를 주셔서 영광스럽고 한편으로는 과분하게 생각한다”며 담담히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내게 값지게 살아가라는 격려와 응원으로 여기고 한국 스포츠 발전에 헌신하는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얼마 남지 않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이자 집행위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 자리까지 오르게 한 피겨스케이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현재 김연아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에 나섰고, 평창에서 동계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자 굵은 눈물방울을 쏟아낸 바 있다. 이렇듯 평창 동계올림픽과 김연아의 관계는 각별한 만큼 그 역시 평창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김연아는 “평창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라면서 “한국 팬들은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고 그것이 경기장에서 좋은 분위기로 나타날 것이다. 최고의 게임을 만들 것으로 확신한다”고 응원의 말을 잊지 않았다. 김연아는 피겨를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위치에서 단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다. 이것이 과연 그만의 우월한 탤런트 때문일까. 그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소문난 노력파 그리고 악착같은 정신력으로 더 유명하다. 이것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김연아로 성장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김연아는 주니어 무대에서부터 자신의 잠재성을 폭발시키며 최고의 위치에 올랐고, 시니어에 올라가자마자 자신이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메달을 따내며 ‘올 포디엄’을 달성했다. 하지만 척박한 한국 피겨 환경은 선구자에게는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스케이트 부츠가 맞지 않아 아픈 발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려야만 했고 세계대회에 참가할 때면 좁은 이코노미석에 몸을 구겨 넣어야 했다. 또 자신을 관리해주는 전문 스태프조차 없어 고관절 부상에 한때는 현역생활을 마감 지어야할 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연아는 특유의 오뚝이정신으로 꿋꿋하게 이겨냈다. 이러한 시련을 극복하니 그에게 그야말로 장밋빛 인생이 찾아왔다. 김연아는 두 차례 세계 선수권을 석권했고,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기를 펼쳐냈다. 당시 김연아는 라이벌이었던 아사다 마오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압도적인 연기와 뛰어난 기술을 선보였고, 결국 총점 228.56점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성적을 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 신기록과 기네스북 등재는 덤이었다. 이후 김연아는 몇 년간의 휴식기를 가진 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해 2012년 12월, 전격적으로 현역에 복귀, 또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아름다운 외모만큼 기량도 변함없었다. 이듬해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생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 2연패라는 꿈을 향해 순항을 거듭했으나 그는 모호한 판정에 휘말리며 은메달에 그쳤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당당한 미소를 짓고 자신을 응원해준 국민을 위로하면서 기나긴 피겨 인생을 마무리했다. 현재 피겨계는 소치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인플레 현상 즉, 점수 부풀리기가 극심한 상황이다. 정상권에 있는 선수들은 200점대를 안방 드나들듯 쉽게 돌파하고 있다. 김연아가 2009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여자선수로는 최초로 200점대를 돌파했을 때만해도 200점이란 마의 구간이었다. 이렇듯 워낙 거품 현상이 심화된 탓에 금방이라도 김연아의 성역에 가깝던 점수는 깨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김연아의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극심한 인플레 현상 속에서도 7년째 유지되고 있는 김연아의 기록은 새삼 그가 얼마나 완벽한 선수였는지를 일깨우고 있다. 김연아는 지난 10월 제54회 체육의 날 행사에서 1등급에 해당하는 청룡장을 받았다. 이미 2012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공로로 국민훈장인 모란장을 받은 바 있는 김연아는 ‘훈장을 받은 후 7년 이내 다른 훈장을 받지 못한다’는 규정에 따라 수여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공적이 뚜렷한 경우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 인해 심사를 통과했다. 이밖에도 김연아는 현역 은퇴 이후에도 평창 올림픽 홍보대사를 비롯해 적지 않은 CF에도 출연하며 여전한 영향력과 인기를 얻고 있다. 더불어 피겨여왕에서 스포츠영웅으로 거듭난 김연아는 더 이상 빙판 위에 서진 않지만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한국 동계스포츠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렇듯 김연아는 ‘최순실 게이트’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에 다시 한 번 희망의 존재가 되고 있다. 은퇴 후에도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스포츠영웅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김연아와 함께 대한민국의 심장은 다시 뜨거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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