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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진 치과 의원 | 2018년 05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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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장인이 작품을 만들듯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 병원 분위기나 진료 내용이 특이한 곳으로 유명한 포항의 박영진 치과를 찾았다. 박영진 치과의 병원 규모는 개인 의원으로서는 한국 최대이나 부원장이나 페이 닥터 없이 하루에 10명
정도만 예약해서 진료하는 조금은 특이한 치과이다. 처음에 박영진 원장은 취재를 거절했다. 별로 알려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렵게 인터뷰 요청을 하고 시간 약속을 했다.

*포항으로
KTX를 타고 포항역에 내렸을 때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다. 포항이 바닷가여서 일까? 택시를 타고 병원 문을 들어섰을 때 필자는 깜짝 놀랐다. 호텔 같은 분위기의 대기실에는 와인색 나팔모양의 커다란 스피커가 있고 그 스피커에서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오디오는 100년 전의 진공관에서 나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소리라고 했다. 이렇게 큰 규모의 병원에 페이 닥터도 없이 하루에 소수의 환자만 예약을 해서 진료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치과 진료는 장인이 작품을 만들듯이 온 정성을 다해 진료해야 합니다. 자연 한 사람을 진료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고 하루에 많은 사람을 진료하지 못합니다. 많은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수준이 다른 페이 닥터를 두기 보다는 저는 차라리 환자수를 줄입니다.”라고 말했다.
박영진 치과는 32년 전인 1986년 포항의 가장 중심가에 개원했다. 그러나 밀려드는 환자가 너무 많아 소화를 전부 할 수 없었다고 그는 소회했다. 이런 치과 진료는 진료가 아니라고 생각한 박 원장은 25년 전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포항의 최 외곽지로 이전한다. 교통도 불편했고 주위에는 주거 지역이나 상권도 없었다. 말하자면 개원지로는 최악이었다. 처음에는 간판도 없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박 원장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병원 경영이 어렵더라도 나와 환자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진료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진료를 받은 사람은 다시 저를 찾아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주위의 걱정과는 다르게 병원은 날로 번창해 갔다.

박영진 원장은 서울대학교 치과 대학을 졸업 했고 미국 일리노이 치과 대학을 수료 했다. 현재 170여 평의 단일 치과로는 한국 최대의 규모이나 많은 환자를 진료하지 않고 페이 닥터 없이 박 원장 혼자 하루에 10명 정도만 예약해서 진료하고 있다. 박영진 원장은 새벽 6시전에 병원으로 출근한다. 아무도 없는 병원에 나와 전날 진료한 환자들을 하나하나 체크해 보고 당일 진료할 환자의 내용을 시뮬레이션 한다. 급하게 시간에 쫓기듯이 진료 하는 것이 아니라 진료 시 일어 날수 있는 온갖 변수를 미리 예상하고 진료에 임하는 것이다. 자연 진료의 수준은 높을 수밖에 없다.

장인이 작품을 만들듯이 온 정성 쏟으며 진료
“치과 진료는 메디컬 진료와 달라 치료 직후의 결과가 좋았다고 만족하면 안 됩니다. 훌륭한 건축물이 오랜 세월 동안 변함이 없듯이 치과 진료도 진료 후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 되어야 합니다” 똑같은 상태라고 하더라도 치과 진료는 치료 계획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진료 수준에도 차이가 있다. 그러나 보험이라는 틀 속에서 똑같은 진료라고 단정을 짓고 충분한 상담과 설명을 거치지 않은 채 시간에 쫓기는 진료를 하게 되면 서로가 만족하는 진료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환자들이 진료 내용과 과정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너무 싼 곳으로만 찾아다니는 현실이 조금 안타깝습니다. 평당 가격이 너무 싼 집이라면 어디엔가 문제가 있듯이 치과 진료도 싼 곳만 찾게 되면 결국 장기적으로 환자에게 피해가 갑니다.”
그래서 그런지 박영진 치과에서 진료를 받은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서 그 진가를 알게 되어 오래 전에 치료 받은 사람이 재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30년 전에 진료 받은 사람도 구강 내 사진과 함께 그대로 보관하며 관리해주고 있는데, 그 때문에 멀리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 사람도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포항으로 진료 받으러 오곤 한다. “치료의 전 과정을 제가 직접 환자와 같이 의논하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박영진 원장은 진료와 수술 전후 과정을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환자에게 모두 보여주고 직접 세밀하게 설명한다. 그래서 그런지 환자들과의 분위기는 상당히 좋아 고마워하는 환자들에게 끊임없이 촌지가 들어온다고 한다.

음악이 흐르는 내 집 같이 편안한 치과
“치과는 많은 이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이라 환자들이 적절한 진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 집 같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박 원장은 진료 받는 환자들이 편안할 수 있도록 환자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설계를 직접 했고 자재를 구해 공사 감독까지 했다. 병원 곳곳에는 대기실을 비롯하여 수술실까지도 음악이 흐르고 있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음악은 진공관에서 나오는 소리이고 이 진공관들은 100년 전에 만들어진 미국의 웨스턴 300B 각인관, 유럽의 시멘스 Da 등 지금은 구하기 힘든 전설이 된 고전관이라고 한다.

향후 포부와 계획
박영진 원장은 한국 레이저 학회, 보철 연구회, IBS 국제 임플란트 학회의 창립 회원이다. 현재 그는 환자 진료와 함께 후진 양성을 위해 다양한 강연회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에 한국의 뛰어난 진료방법을 전달해 한국 치과계의 위상을 높이는 일을 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중국의 한 대학 병원의 초청을 받아 중국인 치과의사 수십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난도의 임플란트 시술을 선보였고 이것이 우리나라 신문에 실린 바도 있다. “한국의 치과 진료 수준은 이미 전 세계 정상급입니다. 임플란트 분야를 예로 들면 IBS 임플란트 시스템은 기존 임플란트 개념을 깬, 유럽과 미국에도 없는 혁신적인 이론으로 나온 임플란트입니다. 그래서 세계 유명 대학 병원에서도 고가로 시술되며 그 우수성을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의 치과 의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뛰어난 치과진료와 임상자료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한국의 치과계 위상을 높이는 일을 하겠습니다.”
발전하는 치과 진료를 앞서가기 위해서는 아직도 부족하고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박영진 원장은 지금도 여전히 시간을 쪼개어 각종 학회에 참석해서 공부한다.

모교에 매년 3천만 원 기부 등 사회 환원
박 원장은 병원을 하면서 생긴 상당액의 수입을 포항 사회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사비를 들여 포항 시민에게 매달 한 달도 빠지지 않고 무료로 개최한 11년 동안의 127회의 음악회는 이후 포항 시향, 포항 문화 예술회관이 탄생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고 ‘문화의 불모지 포항’이라는 이미지를 지금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또 사진작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박 원장은 매년 개최하는 사진 전시회에서 생긴 수입을 전액 지역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집안이 어려워 고학하다시피 하여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결혼을 할 때에도 흑백TV 하나 없었고 비키니 옷장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언젠가 돈을 벌게 되면 그 돈을 사회에 환원하자고 약속했습니다.” 박영진 원장이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4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는 매년 모교인 대구고등학교에 3천만 원을 기부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그간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동문이 무려 3만 5천명에 달한다. 그중 국회의원 혹은 장관 등 사회 유명인사도 많다. 그러나 모교를 잊지 않고 매년 수천만 원씩 기부를 하고 있는 이는 박영진 원장이 유일하다.
“가장 큰 기부는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별것이 아닙니다. 한때 학업을 중단할 뻔했던 제가 지금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것을 돌려 드리려고 하는 것뿐입니다.”라며 겸손해 하는 박영진 원장의 향후 행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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