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미술관(관장 김태령)은 12월 6일부터 2014년 3월 2일까지 20세기 초에서 동시대에 이르는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과 연구 아카이브를 함께 전시하는 <애니미즘>전을 미술관 전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본 전시를 통해 <애니미즘> 개념으로 오늘날의 현대성을 돌아볼 수 있도록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국내외 37개 팀 작가의 작업 50여 점이 소개된다. 애니미즘은 사물에 영혼이나 주체적 성격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으로, 합리와 이성으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배척되거나 무시되어 왔다. 20세기 초에서 동시대까지 다양한 시기의 작가들을 선보이는 <애니미즘>은 근대적 이성주의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늘날에도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있다. 이번 전시는 애니미즘이라는 영역을 통해 이를 둘러싼 현상이나 근 현대 담론, 애니미즘적 세계를 통한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 등을 이야기한다. 자연과 인공, 합리성의 구축, 지식의 체계, 무속과 믿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과 자료를 제안하며 애니미즘을 둘러싼 세계의 이면을 재확인하고, 우리의 근대성을 반성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애니미즘>전은 애니미즘을 단순히 현대적이지 않은 오브제나 비서구적인 어떤 것으로 보는 관점을 탈피하고자 한다. 오히려 생명이 없는 물체에 영혼을 부여한다는 제한적 애니미즘 개념을 넘어 이 개념을 둘러싼 이해와 표현, 상상, 담론을 아우르는 미술 작품, 다큐멘터리 영화 등과 지식 활동을 선보인다. 특히 본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안젤름 프랑케는 애니미즘을 서양식 경계 짓기의 도구이자 담론으로써 바라보고 있다. 이성을 가진 근대 주체의 형성 과정에서 애니미즘과 같은 영역은 전근대이자 원시적인 것으로 구별되었던 만큼, 이 개념을 서구식 근대성과 식민지 타자들을 가르는 명확한 경계를 세운 장치로 보고 이에 대한 반성적 접근을 시도한다. 한편 나아가 오늘날의 사회에서 토착문화의 파괴에 대한 저항성과 애니미즘적 세계관을 통한 새로운 정치성을 다루어보고 있기도 하다. <애니미즘>은 2010년 벨기에 앤트워프 엑스트라시티에서 시작되어 베른, 베를린, 뉴욕, 중국 선전 등 여러 나라의 주요 미술 기관에서 개최되었는데, 특히 이번 한국 전시는 큐레이터 안젤름 프랑케와 협업과 지역 리서치를 통해 다수의 국내 작가를 비롯, 동아일보의 역사적 아카이브에서 찾은 20세기 초 신문자료, 일민시각문화총서를 통해 축적한 시각문화 기록자료 가운데 일부 또한 선보이며 전시를 더욱 풍성하게 구성하였다. 본 전시를 기획한 안젤름 프랑케Anselm Franke는 현재 독일 세계 문화의 집 시각예술 분과 수석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며, <애니미즘>은 전시, 컨퍼런스, 도서 출간 등으로 확장하며 지속되는 프로젝트이다. 일민 미술관에서의 전시는 아시아권에서는 순회전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치러지며, 2014년에는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는 동시대 예술 센터인 아쉬칼알완Ashkal Alwan으로 무대를 옮겨 치러질 예정이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일민미술관 홈페이지 및 전시 개막에 맞춰 출간된 출판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애니미즘> 전시는 예술이나 만화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에서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애니메이션animation으로부터 출발한다. 예술에서 애니메이션은 특히 멈춰있는 어떤 것에 움직임을 가해서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로 흔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조각이나 특정 회화와 같은 미술 작품들이 관객의 시선을 되살아나게 하는 효과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미술의 여러 기법 중 하나로 인식되는 애니메이션은 기법에만 국한되지 않는 역사적 논쟁의 주제이다. 애니미즘을 전시의 주제로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이 개념이 서구 근대성이라는 개념의 실제적인 제약이 되는 동시에, 근대 지성계의 과학 원리 분야에서 지식의 인식과 질서에 깊이 새겨져 있는 근대적 현실 원칙에 대한 도발이기 때문이다. 애니미즘의 관습들은 기껏해야 ‘문화’라는 범주 아래에서 인식되었고, 그것도 우주와 세계의 실제적인 특질에 발언하고자 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였다. 결론적으로 <애니미즘>은 애니미즘에 대한 문화 인류적인 유물들을 진열장에 담아 전시하면서 타 문화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있다고 주장하는 류의 전시가 아니다. 애니미즘을 전근대적인 타자로 보고 단순히 생명이 없는 물체에 영혼을 부여하는 의미로 잘못 믿고 있는 서구적, 근대적 사고는 사실 그 자체로 이 근대성의 근본적인 가정들을 증후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반해 이 전시의 의도는 서구 근대성의 뿌리에 자리 잡은 근본적인 가정들을 비출 수 있는 거울로서 애니미즘 내의 용어와 개념을 살펴보고, 이것이 경계, 그리고 경계를 만들어내는 방식, 기술, 신화들의 산물임을 인식하고자 한다. <애니미즘> 기획은 애니미즘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와 그 표현에 대한 근대적 상상들을 반성하고, 또 그에 대한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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