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대광은 관람객이 작품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설치 작업을 위주로 작업한다. 그의 설치 작업은 주변 환경-작품-관람자를 매개하여 관람자가 이동하거나 머물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과 전략으로 천대광은 작품이 전시되는 장소를 생경한 풍경으로 전환하여, 일상의 공간을 새롭게 지각하고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집우집주>는 ‘우주’라는 단어가 집‘우(宇)’, 집‘주(宙)’로 이루어졌듯이, 우리가 사는 ‘집’이 모여 ‘도시’를 이루고 더 나아가 ‘우주’가 된다는 개념에서 출발하였다. 이번 전시를 위해 천대광은 청주관 잔디광장에 다채로운 재료와 형상으로 이루어진 작은 ‘도시’를 제작했다. <집우집주>는 이상 도시의 은유적 표상으로, 한국 대종교 경전인 『천부경』과 중세 유대교 신비주의 사상 ‘카발라’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모두 우주의 원리와 이치를 설명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작품의 배치는 ‘카발라’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지혜를 담은 생명의 나무’ 도상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천대광은 이번 신작을 위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체제, 자본, 문화 등을 가시화하기 위해 다양한 예술적 전략을 취한다. 다양한 건물의 외관을 섞기도 하고, 새로운 문양을 넣기도 하는 등 자신만의 독특한 미감으로 재해석하여 가상의 건축물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도시 건축물을 변형하고 재창조하는 예술을 통해 미래의 이상적인 거주 공간과 삶의 태도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집우집주>는 총 8점의 ‘집’과 그 외 벤치, 테이블 등의 가구로 구성되었다. ‘집’ 형태의 조각들은 천대광이 아시아 국가를 직접 여행하며 기록하고 수집한 건축 사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다양한 장소의 건물과 가구들의 재료, 양식 등은 산업화 이후 정치, 경제, 문화 등이 어떻게 건축물에 새겨져 있는지, 그 얽혀 있는 관계와 흔적을 보여준다.
국내 건축물을 모티프로 제작한 <건축적 조각/보잘것없는 집/가파리 240번지>는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가파도민들의 고단한 삶을 화려하고 풍부한 색채로 표현하여 그들의 삶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건축적 조각/양평터미널>은 터미널이라는 공간과 골함석이라는 건축 재료를 통해 현대인의 삶을 여러 층위에서 성찰한다.
아시아 국가의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건축적 조각/다리 없는 집/캄퐁 플럭의 수상가옥 1~3>은 캄보디아 캄퐁 플럭에 있는 수상가옥을 모티프로 제작한 작품으로, 수상가옥에 얽혀 있는 정치적, 경제적 역사와 그곳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의 삶을 살펴보고 행복한 삶의 기준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건축적 조각/수랏타니의 집>은 건물에 녹아있는 태국의 종교와 기후 등 독특한 문화를 발견하고, 이를 반영한 새로운 조각 작품을 재창조한 작품이다. <건축적 조각/크노르 벤치>는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 산하 브랜드 ‘크노르’ 광고가 그려진 벤치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선진 자본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일상까지도 잠식하는 현상을 비틀어 보여준다. 작가의 상상만으로 지어진 <건축적 조각/공허한 빛의 집/RGBCMYK 유리집>은 기본 6가지 색채로 이론상 존재하는 모든 색을 표현할 수 있듯이, 기본 요소만으로 만물이 생성되는 우주의 메커니즘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상상의 집이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는 청주에 있는 근대건축물에서 모티프를 얻어 작품 1점을 제작했다. <건축적 조각/후천개벽(後天開闢) 탑>은 청주에 있는 ‘탑동양관’을 모티프로 하여 불교의 탑 양식을 뒤섞어 만든 새로운 형식의 건축적 조각이다. 한국 문화에 영향을 끼친 불교, 근대기 도입된 절충식 서양 주택 등 다양한 건축물의 양식을 혼합해 동서양 종교문화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양상을 조형적으로 드러낸다.
인구 대부분이 도시에 거주하는 오늘날,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도시를 추구함에 따라 인구 밀집, 환경오염, 집값 상승 등 도시 문제들이 불거졌다. 이제 이 난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그 시급성은 더 대두되었다. 이러한 당대의 상황에서, <천대광: 집우집주> 전시는 낯익은 일상 공간을 낯설게 재창조하여 우리 주변의 공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둘러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집이 모여 도시가 되고 우주를 이루듯, 집이라는 나의 일상의 공간부터 관심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이상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산업 공간에서 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미술관 앞 잔디광장에서 펼쳐지는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가 사는 도시와 사회를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라며 “스쳐 지나갔던 일상의 공간과 장소의 의미를 재발견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도시를 되돌아보고 이상적인 공간과 삶은 무엇인지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