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몰아치는 거대한 설산, 냉혹한 대자연에 갇힌 공포, 그 공포를 이겨낸 생의 투지가 담긴 연극 <터칭 더 보이드>는 1985년, 아무도 등반하지 않은 페루 안데스산맥 시울라 그란데의 서쪽 빙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한 영국인 산악가 조 심슨과 사이먼 예이츠의 생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동명의 회고록과 다큐멘터리 영화로 이미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전한 바 있으며 연극으로는 2018년 영국에서 초연되어 ‘무대 위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음을 증명한 공연’, ‘고조된 전율과 긴장감에 머리가 아찔하다’ 등의 찬사를 받으며 장르를 뛰어넘는 실화의 묵직한 감동을 입증했다.
2022년 한국 초연에서는 기술적 한계로 무대에서는 좀처럼 소개되지 않았던 ‘산악 조난’ 상황을, 몰입형 음향 기술을 포함한 관객의 오감과 상상력을 일깨우는 무대만의 언어로 시공간의 제약을 뚫고 무대에 펼쳐낸다. 산이 내는 절대 고독의 언어 ‘공허(void)’가 극장을 감싸고, 스코틀랜드의 펍에서 영국 국립공원의 거대한 바위벽으로 그리고 페루의 설산 한 가운데로 순식간에 관객을 이동시키는 마법 같은 순간들은 역설적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연 예술이기에 가능한 생생한 전율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연출은 현재 대한민국 공연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는 김동연이 맡았다. 인간을 향한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탁월한 연출력으로 엄혹한 대자연에 맞선 한 인간의 뜨거운 생의 투지를 담아냈다.
조난사고로 설산에 고립된 ‘조’역은 연극 <오만과 편견>, <킬 미 나우>와 뮤지컬 <곤 투모로우>,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 등에서 섬세한 감성과 풍부한 표현력으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배우 신성민과 연극 <얼음>, <메모리 인 드림>,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스타트업> 등에서 안정적인 연기력과 강한 존재감을 선보인 김선호, 연극 <마우스피스>,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드라마 <로스쿨> 등을 통해 연기 잘하는 신인배우에서 믿고 보는 배우로 성장한 이휘종이 참여한다.
조의 누나 ‘새라’역에는 연극 <렁스>, <프라이드>, <킬 미 나우>와 드라마 <VIP> 등에서 배우 특유의 진정성과 따뜻함으로 작품 속 캐릭터 그 이상의 매력을 선보인 배우 이진희와 연극 <분장실>, <와이프>, <프라이드>와 드라마 <비밀의 숲 2> 등을 통해 정확한 캐릭터 분석으로 작품의 깊이를 더 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배우 손지윤이 참여해 생사의 경계에 선 ‘조’에게 삶의 투지를 일으킨다.
조와 함께 시울라 그란데를 등반한 ‘사이먼’역에는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알앤제이>, <톡톡>, <킬 미 나우> 등에서 밀도 높은 감정 연기로 캐릭터에 입체감을 불어넣은 배우 오정택과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와이프> 등에서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정교하게 펼쳐낸 배우 정환이 함께해 딜레마에 빠진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연극 <터칭 더 보이드>는 지난달 8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막을 올려 오는 9월 18일까지 공연된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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