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 대표 추상미술가 47인의 작품 150여 점을 통해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역사를 조망한다. 특히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건축과 디자인 등 연관 분야와 접점을 형성하고, 당대 한국 사회의 변화와 연동되면서 한국 미술의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전시는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시대별 주요 양상을 따라 5개 섹션으로 구성했다. 첫 번째 “새로움과 혁신, 근대의 감각”에서는 근대기에 미술과 디자인, 문학의 영역까지 확장된 기하학적 추상의 사례를 살펴본다. 1920-30년대의 경성에서는 기하학적 추상이 새로움과 혁신을 상징하는 감각으로 인식되었다. 1930년대 김환기와 유영국의 최초의 한국 기하학적 회화 작품 〈론도〉(1938), 〈작품 1(L24-39.5)〉(1939)을 비롯, 1930년대 단성사와 조선극장에서 제작한 영화 주보와 시사 종합지의 표지, 시인 이상의 기하학적 디자인이 돋보이는 잡지 『중성』(1929)의 표지 등을 소개한다.
두 번째 “한국의 바우하우스를 꿈꾸며, 신조형파”에서는 바우하우스를 모델로 하여 1957년 한국 최초로 결성된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의 연합 그룹 ‘신조형파’의 활동상과 전시 출품작을 소개한다. 이들은 현대사회에 적합한 미술은 합리적인 기준과 질서를 바탕으로 제작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이라고 보았고, 이것을 산업 생산품에도 적용해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이상을 보여주었다. 건축가 이상순이 당시 촬영한 <신조형파전> 작품 및 전시장 사진과 김충선의〈무제〉(1959)를 포함한 변영원, 이상욱, 조병현의 출품작 등을 소개한다. 세 번째 “산과 달, 마음의 기하학”에서는 김환기, 유영국, 류경채, 이준 등 1세대 추상미술가들의 작품과 이기원, 전성우, 하인두 등 2세대 추상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적인 기하학적 추상의 특수성을 살펴본다.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에서는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쳐 추상을 제작하거나, 자연을 대하는 서정적인 감성을 부여한 작품들이 발견된다. 엄격한 기하학적 형식을 탈피하여 한국적 특수성을 담아낸 유영국의 〈산〉(1970), 전성우의 〈색동만다라〉(1968) 등을 선보인다.
네 번째 “기하학적 추상의 시대”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엽까지 기하학적 추상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양상을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본다. 우선, 1967년에 개최된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을 계기로 ‘청년 미술로서의 기하학적 추상’이 등장하게 된 상황을 소개한다. 앵포르멜 이후의 미술을 모색했던 최명영, 문복철이 <한국청년작가연립전>에 출품했던 작품이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재공개된다. 이승조의 1970년 <제4회 오리진>전 출품작도 53년 만에 재공개된다. ‘미술, 건축, 디자인의 삼차각설계도’에서는 당대의 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들이 공통적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서울의 현대성과 미래적인 국가의 면모를 재현하는데 적합한 미술로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상정한 상황을 소개한다. 최초로 공개되는 윤형근의 1960년대 기하학적 추상작 〈69-E8〉(1969)을 포함해 박서보, 하종현 등 한국 추상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기하학적 추상 시기의 작품을 선보인다. ‘우주시대의 조감도’에서는 1969년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면서 시작된 우주시대와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접점을 소개한다. 변영원의 〈합존 97번〉(1969)을 포함해 이성자, 한묵 등의 작품을 소개한다.
다섯 번째 “마름모-만화경”에서는 창작집단 다운라이트&오시선의 커미션 작품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이 지닌 마름모와 같은 반복적 패턴에 주목하고 이를 디지털 만화경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그룹은 아티스트, 디자이너, 엔지니어로 구성되어 순수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탐색한다. 전시 기간 중 ‘전문가 강연 및 토론’과 ‘학예사 대담’ 등 전시 연계프로그램이 개최된다. <기하학적 추상미술과 디자인>을 주제로 미술사, 디자인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학술적 의의를 심층적으로 논의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가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고, 더욱 활발한 연구와 논의를 끌어내어 한국 미술의 줄기를 더 풍성하게 키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