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부터 개발되어 온 인공지능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생성’이란 기능이 더해지면서 ‘인공’을 넘어 ‘인간’을 대체할/초월할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기술력과 발전은 우리가 상상으로만 그렸던 미래를 앞당기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환경, 노동, 데이터 식민주의 등 사회적, 윤리적 문제 또한 가중하고 있다. 전시는 인공지능의 행보를 추적하며, 인공지능이 구축해 가는 인공적 세계의 모습을 펼쳐 보이고자 한다.
김아영, 슬릿스코프, 언메이크랩, 이안 쳉, 제이크 엘위스, 추수, 트레버 페글렌, 히토 슈타이얼 등 총 8명(팀)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오늘날 인공지능을 둘러싼 논쟁적 키워드를 작품과 연결하여 제시한다. 총 8개의 키워드는 ‘미래와 비미래’, ‘생성과 비생성’, ‘진화와 공진화’, ‘궤도 댄스와 두 개의 눈’ 등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선보인다.
첫 번째 섹션 ‘미래와 비미래’에서는 인공지능의 예측 기술을 중심으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것의 본성을 살펴본다. ‘미래’ 키워드로 제시된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의 <이것은 미래다>(2019)는 인공지능의 예측 알고리즘이 가지는 근시안적 시각의 한계를 내비치며, 예측 알고리즘에 기대어 미래만을 추측하고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인공적 우둔함을 비판한다. ‘비미래’ 키워드에선 언메이크랩(Unmake Lab)의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2023)과 <비미래를 위한 신탁>(2023), 그리고 <가정 동물 신드롬>(2023)을 선보인다. 3점의 작품은 인간의 이해 범주와 시각 체계 안에 포섭된 인공지능의 ‘미래 없는 예측’을 담고 있다.
두 번째 ‘생성과 비생성’은 ‘생성’의 기능으로 창작의 역할을 부여받은 생성형 인공지능에 관한 시각을 다룬다. ‘생성’ 키워드에는 추수(TZUSOO)의 <달리의 에이미>(2024)와 <임산부 에이미>(2024)가 소개된다. <달리의 에이미> 연작은 생성 혹은 창작을 두고 인간과 인공지능이 벌이는 경쟁의 관계를 가시화한다. 작가는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달리 2(DALL·E 2)가 그려낸 에이미를 통해 예술가의 관습적인 창작에서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예술을 선보인다. ‘비생성’에는 제이크 엘위스(Jake Elwes)의 <더 지지쇼>(2020)와 <지지와 미>(2020)가 전시된다. 2019년부터 작가가 진행해 온 ‘지지(Zizi)’프로젝트는 드래그 퍼포먼스를 딥페이크한 작업이다. 제이크 엘위스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인공지능의 기술에 축적된 편견과 소외되는 존재들을 설명한다.
세 번째 섹션인 ‘진화와 공진화’에서는 ‘진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공지능이 영향을 미칠 세계 그리고 그 속의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공진화’ 키워드로 소개된 슬릿스코프(Slitscope)의 <시간詩間여행>(2024)은 인공지능 ‘시아’와 참여자가 함께 시를 쓰는 경험을 ‘여행’으로 은유한 작품이다. 인간과 기술이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함께 창작하는 과정은 공진화적 관계를 그리며, 도래할 세계를 가늠하게 한다. ‘진화’ 키워드로는 이안 쳉(Ian Cheng)의 작품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2021-2022)가 소개된다. 영상은 인공지능 BOB이 이식된 소녀 찰리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공지능이 나보다 내 삶을 더 잘 살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안 쳉의 작품은 인공지능 시대에 ‘더 나은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네 번째 섹션 ‘궤도 댄스와 두 개의 눈’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오늘날 대두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조명한다. ‘궤도 댄스’ 키워드를 가진 김아영(Ayoung Kim)의 <딜리버리 댄서의 구>(2022)는 가상의 서울을 배경으로 배달을 수행하는 여성 라이더 에른스트 모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는 배달 플랫폼과 알고리즘으로 인해 통제받는 라이더의 신체와 시간을 시각화하며, 오늘날 플랫폼 노동의 문제를 드러낸다. ‘두 개의 눈’ 키워드로 소개되는 트레버 페글렌(Trevor Paglen)은 컴퓨터 시각부터 기계학습 등 다양한 형태의 자동화된 시각 체계를 시각화한 작품 <이미지 연산 작품 10번>(2018)을 선보인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기술은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으며, 정치적 사용에 따라 기술의 보는/보이는 방식이 결정된다고 지적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은 서로 연동되는 8개의 키워드와 작품들을 함께 살펴보며 인공지능을 둘러싼 오늘날의 이슈를 고찰해볼 수 있다며, 인공지능의 예측 가능성이나 불가능성의 이야기보다는 인공지능이란 기술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사유를 다시 점검하고, 새로운 상상 위에서 기술과의 공생 방식을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성우 기자